이번 설은 긴 연휴 속에 코로나 확진자는 더 늘었고 어떻게 가족들이 모이면 좋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우리집이 남산 아지트였다. 엄마는 더 일찍 올라오셨고 아빠는 설 전날 오시기로 했다. 오전 11시 50분 아빠를 마중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가는 발걸음은 설레기도 하고 맛난 음식, 술 한잔, 산책길 아빠와 하는 일들은 재밌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서울역 롯데 마트에서 장을 좀 더 보기로 했다. 생선회 랑 문어와 야채 사기에 괜찮았고 어슬렁 거리는 사이에 아빠 도착 시간이 다 되어갔다. 원래는 셋이서 플랫폼에 내려 가기로 했는데 계산대가 밀려 있었다. 내가 플랫폼 내려가서 아빠 모시고 올께. 장바구니를 후다닥 던지고 플랫폼으로 뛰었더니 역시 내가 빠르 긴 한가보다. 늦을까 걱정했는데 기차 도착 전 5분여가 남았다.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가 시간이 다가올수록 행복했다고 했던가. 나도 아빠가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설레었다. 아빠는 집 앞 정육점 고기가 싸고 맛있다고 항상 서울 오실 때면 한우고기를 잔뜩 사 오신다. 서울서 사도 되는 걸 무겁게 지고 오시는 것 같아 말려봤지만 지금은 많이 사오라고 주문도 넣어본다.
멀리서 기차가 들어오고 기다리는 10번 플랫폼에 기차가 선다. 철거덕 문이 열리는데 아빠가 제일 먼저 서 계신다. 한 손엔 곷감상자를 다른 손에는 빨간 장미와 안개다발이 예쁜 꽃다발을 들고 계셨다. 이렇게 기차에서 내리며 꽃다발을 주시니 너무 좋았다. 무거운 짐을 받으려니 꽃만 들고 가라고 하시면서 굳이 고기가 든 배낭과 곷감상자를 드신다. 한 손엔 꽃다발 한 팔은 아빠 랑 팔짱을 끼고 플랫폼을 오르니 빨간 장미에서 솔솔 풍기는 향기가 감기 롭다. 마트로 향하는 짧은 데이트 길에서 아빠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것은 마음이다. 돈이 많고 적음과 명예 등은 나이가 들어 어느 순간이 되면 거의 비슷하다.
부모에게 마음 많이 써 줘서 고맙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 마음이다.”
이렇게 설 연휴가 시작되었고 코로나로 대식구가 음식점을 들락거리기엔 위험스러워 집에서만 북적 대며 음식을 해봤다. 올 설엔 유달리 추워서 아빠 랑 산책 나가기가 힘들었다. 예전 같으면 경복궁도 놀러가도 하루 한번씩은 좋아하는 맛집을 다녔는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실내경기 2편을 하게 되었다. 고스톱과 윷놀이
고스톱은 점당 100원, 윷놀이는 한판에 5천원이다. 나는 천원지폐와 동전을 짬짬이 모아두었고 만원지폐에 9천원을 주는 고리 대금업까지 겸하게 되었다. 역시나 민족 오락이다. 오랜만에 하건만 스릴 넘치는 윷판과 아빠가 첨가하는 광 박 피 박 쌍피등 잊어버리지 않은 고스톱 룰은 정겹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니 서른 즈음 엄마 랑 아빠, 나 셋이서 다닌 동유럽과 터키가 기억에 제일 남았고 엄마 랑은 둘이서 패키지 여행을 많이 했건만 아빠 랑 둘이서 한 여행은 한번도 없었다.
입춘대길 봄이 왔고 우수에는 아빠 랑 둘이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해본다.
모든 것은 마음이다. 아빠가 하신 주문을 외워본다.
아빠 사랑합니다. 그리고 100세 장수는 기본인 거 아시죠? 오래오래 건강히, 든든히 계셔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