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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6. 2024

3. 평화

마! 이리 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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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평화 이야기야.

  ‘평화’는 쉼터에서 지어준 이름이고 그전에는 '마'로 불렸던 가여운 강아지.


  주인은 이유 없이 마를 폭행 했고, 마는 매일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살았대. 각종 질병과 상처를 입고도 치료받지 못해, 눈은 안충으로 흐릿했고 이빨이 부러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나 봐. 


  어느 날 주인은 마를 산에 버렸고, 마는 죽음을 직감하며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대. 그때 지나가던 등산객에 의해 구조되어 쉼터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따뜻한 손길과 치료를 받았다고 했어. 쉼터 사람들은 마를 "평화"라고 부르며, 폭력 없이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고 했어. 평화는 여전히 사람들을 믿기 어렵지만, 새로운 이름과 함께 조금씩 치유받고 있대.      






  평화,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이름이 생긴 순간은 쉼터에서였어. 그전에는 '마'라고 불렸지. 짧고 냉정한 이름, 그 이름 속에는 따뜻함이나 사랑 같은 건 담겨 있지 않았어. 그냥 날 부르는 소리였을 뿐, 그 이상은 없었지.     

  내 삶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어. 주인이 날 처음 집에 데려갔을 때, 난 아직 아기였어. 그때는 내가 정말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작고 약한 몸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사랑을 갈구했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주인은 나를 바라보며 짜증을 냈고, 혼자서도 화를 냈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렸어. 날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언제나 화와 분노가 가득했지. 나는 그가 다가올 때마다 두려움에 몸을 떨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직 그만을 바라보며 그를 반기고 그를 위해 충성을 다했지. 언젠가 그가 날 안아주고,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지.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어. 그는 나를 매일 폭행했어. 손으로, 발로, 때로는 물건으로도. 나는 작은 몸을 웅크리고, 그가 그만두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 온몸에 상처가 나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지만, 그는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다시 다가오면, 나는 또 꼬리를 흔들었어. 이번엔 다를까? 이번엔 그가 나를 쓰다듬어 줄까?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손길과 더 큰 폭력이었어.     


  주인의 폭력 속에서 나는 매일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들이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새로운 상처가 생겼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한 번도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었어. 늘 설사와 복통에 고통스러워했고, 눈에 생긴 안충 때문에 눈이 가렵고 아프고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어. 그의 손길은 결국 내 이빨을 부러뜨렸고, 나는 딱딱한 음식을 씹을 수 없게 되었어. 항상 배고팠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날 바닥에 내팽개치듯 던져버렸고 고통이 너무나 컸던 나는 울부짖었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고, 그는 나를 치료해 주기는커녕, 내 존재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듯 밧줄로 온몸을 꽁꽁 묶어 밖으로 데려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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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지도 모르는 산으로 끌려간 그는 나를 풀어주지도 않고 풀숲 어딘가에 버려두고 가버렸지. 나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쓰러졌고, 다리의 통증은 점점 무뎌졌어. 숨이 가빠오고, 내 몸은 차가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지. 눈앞이 흐려지고, 고통 속에서 나는 마지막 순간을 예감했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어. 그리고 눈을 떠 보니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낯선 친구들이 보였어.      


  그 낯선 곳이 이곳 쉼터야. 이곳은 내가 예상했던 마지막 순간과는 달랐어. 여기는 차갑고 어두운 산속이 아닌,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었지. 처음으로 내 몸에 닿은 손길은 폭력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과 치료였어. 처음 내가 여기 왔을 때 쉼터 가족들은 내가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무척 슬퍼했대. 다리뼈가 두 개나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했어. 그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다루었고, 상처 입은 내 몸을 돌보며 치료해 주었어.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고 두렵고 어려웠어.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지만 아직 어떻게 마음을 열어야 할지, 나를 보는 친구들과 날 돌봐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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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의 사람들은 나를 "평화"라고 불러줬어. 앞으로는 그 어떤 폭력도 당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이래. 그 이름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난 그들의 사랑을 느꼈어.      

  나는 이제 조금씩 나아가고 있어. 예전처럼 날마다 주인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지 않아도 되고, 언제 주인이 나를 괴롭힐지 몰라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돼. 대신 나를 진심으로 돌봐주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최선을 다해 마음을 열어가고 있어.


  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다른 친구들은 모두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어 새로운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살길 바라지만 나는 그냥 이곳 쉼터에 남고 싶어. 

  다시 누군가를 만나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싶지 않거든.      



  나는 이곳 쉼터가 좋아. 

  여전히 많은 상처를 갖고 있지만,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평화와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 몸은 아직 아프지만,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어가고 있는 걸 느껴.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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