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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8. 2024

4. 사랑

  불법 번식장 마당에서 자란 사랑이는 뜬장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친구들을 보면서도 그 친구들이 왜 그렇게 살다 죽어야 하는지 몰랐대. 더위와 추위를 피하지 못했고, 주인이 주는 음식물 쓰레기 같은 밥을 먹으며 살았지만, 사랑이에게는 유일한 아빠, 개 농장 주인이 오면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맞았다고 해. 자신을 예뻐해 주지 않았지만, 가끔 발에 차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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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사랑이의 삶은 마냥 평화롭지 않았나 봐. 

  친구들이 죽어가며 내는 울음소리, 새끼를 빼앗기는 어미들의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대.      

  그러던 어느 날, 구조대가 번식장을 급습하며 사랑이는 주인과 헤어졌고, 쉼터에 와서야 그곳이 지옥이었음을 알게 되었대.     


  사랑이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도 어딘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었어. 


  우리 사랑이에게 직접 한번 들어보자.





  나는 사랑이야. 

  내가 자라온 곳은 마당이 넓고, 친구들도 많았지만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어. 마당 끝에 ‘뜬장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곤 했지. 그때는 왜 친구들이 그렇게 살다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 그저 어리둥절하게 바라볼 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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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늘 더위와 추위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아빠가 밥을 주면 그게 음식물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기뻐하며 먹었어. 먹고 나면 배가 아플 때가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참았지. 가끔 피부가 가렵고 벗겨져도 그럭저럭 견디면서 지냈어. 내게 밥을 주는 사람이 있었거든. 우리 아빠야. 우리 아빠는 늘 피곤해했고, 늘 술에 취해 있었으며, 늘 근심이 가득하고 화가 나 있었어. 그런 아빠를 위로하고 싶어서 다가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 주었어. 나는 그런 아빠를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 그러나 아빠는 내가 다가가면 귀찮다는 듯 발로 나를 차기도 하고,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 그래도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조중한 아빠였어. 나와 마당에서 뛰어놀던 다른 형제들도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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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곳에는 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어. 뜬장에 갇힌 친구들 울음소리가 밤낮으로 이어졌고, 그 소리는 나를 무섭게 했어. 가까이 가볼 엄두도 못 냈지. 친구들의 신음과 비명, 어디선가 들려오는 절규들이 뒤섞여 있던 그 소리… 나중에야 그 소리가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소리, 새끼를 빼앗기고 절규하는 어미의 울음소리라는 걸 알게 됐어. 그래도 그 모든 게 그저 우리 사는 모습이라 생각했어.


  어느 날,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몰려와서 우리 집을 급습했어. 그들은 친구들을 하나씩 이동식 케이지에 태워갔어. 그들은 아빠에게 화를 냈고 나와 몇몇의 형제들은 그들에게 잡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모두 잡히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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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이곳 쉼터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어. 내가 살아온 곳이 지옥이었다는 걸. 더 이상 차갑고 뜨거운 바닥도, 배고픔도, 끊임없이 들리던 울음소리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평안함을 느끼기 시작했어. 이곳이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곳이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야. 


난... 또 하나의 꿈이 있어. 얼른 좋은 가정이 생겨서 가족들을 마음껏 사랑해 주고 나도 사랑받으며 살고 싶어. 그래서 매일 예뻐지는 연습을 해. 호호. 예쁘게 사진을 찍고, 예쁘게 웃고, 예쁘게 앉아서 예쁜 미래를 상상하면서 행복을 꿈을 꾸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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