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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미 Oct 25. 2024

2. 그 흔한 나비 이야기

그 흔한 나비 이야기   

  

  나비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길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젊은 여성을 만나 함께 살게 됐대. 그 여성은 나비를 보살피며 “사뿐사뿐 나비처럼 걷는” 모습에서 이름을 지어줬고, 나비는 새로운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어. 하지만 얼마 후 그 여성의 건강 문제로 나비는 그녀의 어머니 댁에 맡겨졌고, 그곳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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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나비는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을 낳았어. 그러다 마을에 불독이 나타나 덤벼드는 바람에 나비는 아기들만 데리고 도망쳤고, 불행히도 아내는 끝내 찾지 못했나 봐. 아이들이 자라 모두 흩어지면서 나비는 외로이 남게 됐고, 추위에 떨다 결국 길에서 쓰러졌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사람이 나비를 발견해 쉼터로 데려다주었다고 해.


  "나비야 내가 제대로 소개한 거 맞니? 너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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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태어나면서부터 내 삶은 굽이굽이 이어진 모험의 연속이었어.

  처음 기억나는 건 엄마를 잃고 혼자 길을 떠돌던 어린 시절이야. 배가 고프고, 어디서든 따뜻한 곳을 찾으려 애쓰던 그때, 한 여성이 나를 발견했어. 그녀는 흰색 소형차를 몰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지. 그녀는 자신이 먹으려고 산 소시지를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한없이 고마운 마음으로 그걸 다 먹어버렸어. 하지만 내 연약한 몸은 소시지를 소화시키지 못했어. 곧바로 설사를 하고 힘이 빠졌지.


  그 여성이 나를 차에 태워 동물병원으로 데려간 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어. 그곳에서 나는 치료를 받고, 예방접종을 맞았어. 그녀는 나를 집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키고, 따뜻한 우유를 주며 가슴에 안고 재웠어.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어, 이 여성이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는 걸. 그날부터 나는 ‘나비’가 되었어. 그녀가 내 이름을 지어줬지.

  "사뿐사뿐 나비처럼 걸어서, 너는 나비야.”     

  ‘하필 그 흔한 나비... 하하’     


  그렇게 여성, 아니 누나는 어느 날 사귀던 남자친구와 한집에 살게 되었고 그녀의 남자친구, 아니 형과 함께 큰 원룸으로 이사를 한 뒤 무척이나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 그들은 나를 꼭 자신들의 자식처럼 사랑해 주었지.

  그러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누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그녀의 어머니에게 나를 맡기게 되었어.

  엄마집은 누나집과 좀 떨어져 있었는지 한참을 차를 타고 달려 도착했는데, 그곳엔 다른 누나들이 두 명이나 더 있었어. 그들 모두 나를 이뻐해 주었고 틈만 나면 사진 찍느라 움직이지 말라고들 해서 적잖이 힘들기도 했지. 훗~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내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어. 나에게도 여자친구가 생겼거든. 그녀는 매일 밤 우리 집 뒤에서 나를 불렀고 우리는 서로를 많이 사랑했어.


  그녀는 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살았지만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어. 우리는 세상을 함께 탐험하는 게 무척 즐거웠어. 우리는 함께 많은 곳을 다녔어. 세상은 그야말로 넓고 흥미로웠지. 하지만 난 가끔 내 가족들이 생각나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 문제는 여자친구가 내 가족들을 어려워했다는 거야. 그래서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이에선 네 마리의 귀여운 아가들이 태어났어. 우린 더없이 행복하 삶을 이어갔지.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어느 날, 마을에 사나운 불독이 나타나 우리를 덮치려고 했고, 나와 아기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는데 내 아내는…


  아내는 우리 아기들을 지키기 위해 불독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 같아. 꼭 시간을 벌어 내가 아이들과 멀리 도망가길 원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뒤 나와보니 그 어디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어. 나는 울부짖으며 아내를 찾아 헤맸지만, 아내의 흔적이라곤 곳곳에 흩뿌려진 핏자국뿐이었어.


  아이들은 자라면서 지 맘대로 돌아다녔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도 많았고 한 녀석은 차도에서 지나가는 차에 치여 돌아오지 못했지. 매일매일이 걱정이었지만, 나 역시 점점 약해지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혼자 아이들을 찾아 길을 나섰다가 쓰러졌어. 몸이 너무나도 차가워지고 숨이 가빠왔지.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나를 발견했고, 그가 쉼터로 연락해 주어 나는 구조될 수 있었어.      


  참으로 흔한 길고양이 이야기지?

  많은 길고양이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어.

  그저 모두들 행복한 생을 살다가길 바랄 뿐이야


  여전히 나는 아내가 그립고, 잃어버린 아이들도 생각나.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 익숙해지고 있나 봐. 쉼터의 사람들은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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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은 굴곡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어.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들과 다시 만날지도 몰라. 많은 것을 잃었지만,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기다리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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