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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쉼터

아이들과 다시 만날 때까지

by 구르미

그 여성이 나를 차에 태워 동물병원으로 데려간 것이 내 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어. 그곳에서 나는 치료를 받고, 예방접종을 했어. 그녀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켜주고, 따뜻한 우유를 먹인 뒤 품에 안고 재우는 거야.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어, 이 여성이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는 걸. 그날부터 나는 ‘나비’가 되었어. 그녀가 내 이름을 지어줬거든.

"사뿐사뿐 나비처럼 걸어서, 너는 나비야.”

‘하필 그 흔한 나비... 하하. 하지만 난 그 이름이 싫지 않았지.’


어느 날 누나는 사귀던 남자친구와 함께 살게 되었고 그녀의 남자친구, 아니, 형과 함께 이사를 한 뒤 무척이나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아. 그들은 나를 꼭 자신들의 자식처럼 사랑해 주었지.

그러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누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멀리 떨어져 있는 그녀의 엄마에게 나를 맡기게 되었어.


한참을 차를 타고 달려 엄마집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다른 누나들이 두 명이나 더 있었어. 그들 모두 나를 이뻐해 주었지만 틈만 나면 사진 찍느라 움직이지 말라고들 해서 적잖이 힘들기도 했지. 훗~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내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어. 나에게도 여자친구가 생겼거든. 그녀는 매일 밤 우리 집 뒤에서 나를 불렀고 우리는 서로를 많이 사랑했어.


그녀는 꽤 오랫동안 길 위에서 살았지만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어. 우리는 세상을 함께 탐험하는 게 무척 즐거웠거든. 함께 많은 곳을 다녔어. 세상은 그야말로 넓고 흥미로웠지. 하지만 난 가끔 내 가족들이 생각나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 문제는 여자친구가 내 가족들을 어려워했다는 거야. 그러다 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나는 그녀와 함께 길 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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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가족들이 생각났지만 참을 수 있었어. 우리 사이에서 네 마리의 귀여운 아가들이 태어났거든. 우린 더없이 행복한 삶을 이어갔지.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어느 날, 마을에 사나운 불독이 나타나 우리를 덮치려고 했고, 나와 아기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지. 하지만 내 아내는…


아내는 우리 아기들을 지키기 위해 불독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 같아. 꼭 시간을 벌어 내가 아이들과 멀리 도망가길 원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뒤 나와보니 그 어디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어. 나는 울부짖으며 아내를 찾아 헤맸지만, 아내의 흔적이라곤 곳곳에 흩뿌려진 핏자국뿐이었어.



아이들은 자라면서 여기저기 맘대로 돌아다녔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돌아다니느라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때도 많았지. 한 녀석은 차도에서 지나가는 차에 치여 돌아오지 못했어. 그날만 생각하면… 나는 매일매일이 걱정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 내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혼자 아이들을 찾아 길을 나섰다가 쓰러졌어. 몸이 너무나도 차가워지고 숨이 가빠왔지.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나를 발견했고, 그가 쉼터로 연락해 주어 나는 구조될 수 있었어.


참으로 흔한 길고양이 이야기지?

많은 길고양이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어.

그저 모두들 행복한 생을 살다가 길 바랄 뿐이야


여전히 나는 아내가 그립고, 잃어버린 아이들도 생각나.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 익숙해지고 있나 봐. 쉼터의 사람들은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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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굴곡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어. 그리고 언젠가 내 아이들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지. 많은 것을 잃었지만, 나는... 이렇게 아이들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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