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겸손과 자녀간의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자녀를 내 소유물로 착각하여 자녀의 기분이나 감정을 배제한 채 타인을 배려한다는 잘못된 아량으로 자신의 자녀를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배제한 채 상황을 덮으려 할 때, 자녀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의 잘못된 겸손이 아이의 감정을 무시한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훈이는 친구들과 놀이 도중, 제일 친한 친구 명준이와 싸우게 되었는데 명준이가 여러친구들과 함께 훈이를 놀리다가 그만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훈이는 다치기까지 했다. 훈이는 놀림을 받는 것도 억울한데 다치기까지 하면서 더 큰 상처를 입은 듯 했다. 그날 훈이는 집에 돌아와 "최악의 기분이야"라고 표현했지만, 그 상처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 채 명준이와 그 부모님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날 명준이의 부모님은 훈이가 다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고, 나는 그런일로 다투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 때문에 아이들끼리 서로 외면하는 일 또한 없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괜찮아요. 아이들끼리 그럴수도 있죠." 라며 마치 내가 넓은 아량으로 누군가를 용서해주듯 판단해버린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무표정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명준이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는데도 우리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무안해하며 "명준이가 얼마나 무안하겠니? 어서 괜찮다고 해." 라며 다그치는 바람에 아이는 그만 감정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안괜찮아! 안괜찮다고!"
그 순간 나는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았다. 아이가 느낀 억울함과 상처를 간과한 채, 마치 아이의 감정이 내것이라 착각하며 괜찮다고 판단한 것이었기에, 훈이는 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다음날 명준이는 자신이 사과를 했는데도 훈이가 받아주지 않아서 괴롭혔다며 힘들어 했고, 결국 아이들간의 갈등도 피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겸손하게 대처하면서 아이의 감정을 무시한 채 타인의 입장만을 생각한 나머지 아이가 겪은 감정적 상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의 ‘어설픈 아량’이 오히려 아이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부모로서 내가 아이들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존중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겸손이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지만, 자녀에게 겸손을 적용하는 방식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자녀가 상처를 입었을 때, 부모는 그 감정을 먼저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며, 때로는 자녀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고, 그 감정을 받아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겸손은 자녀에게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겸손이 자녀의 감정을 덮어버리는 방식으로 나타나선 안 된다고 본다. 부모는 겸손을 통해 타인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녀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마음을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자녀는 부모의 진정성 있는 겸손을 느끼고, 올바른 감정 처리와 인간 관계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사례는 ‘나의 지나친 겸손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감정적 갈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고,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