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찾아서
성인이 된 유진은 어느 날, 오래된 앨범과 상자들을 꺼내놓고 그동안 일부러 외면해 왔던 기억들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정민의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왜 떠났을까?’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유진의 손은 기억의 흔적을 더듬듯 어머니의 사진을 쥐었다. 어릴 적 어머니의 품에서 느꼈던 온기와 그날의 비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유진은 자신만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 머릿속에서 과거의 조각들을 이어 붙였다. 어머니가 떠난 날, 취한 아버지의 흐릿한 말투, 창밖에 퍼붓던 비, 그리고 어머니가 가끔 불러주던 노래까지.
어느새 유진은 기억 속에서 중요한 단서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엄마가 어디로 갔다고 했더라?”
아버지가 술에 취해 중얼거린 기억이 떠올랐다.
“부산... 바닷가...”
그리고 어머니가 남긴 물건들 중에서 발견한 메모가 있었다. 낡은 수첩 끝 페이지에 적혀 있던 주소.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주소가 단서가 될지도 몰랐다.
그날 밤, 유진은 단서를 따라 어머니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제는 나도 어른이야. 더 이상 이 질문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살 수 없어.’
정민에게 자신의 결심을 털어놓았다.
“정민아, 나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해.”
정민은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
“네가 결심했다면 내가 도울께.”
유진은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그동안의 삶에서 늘 뒤로 미뤄뒀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낯선 도시의 공기,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소금기, 그리고 어릴 적 어머니가 좋아하던 바다를 향한 기억이 얽혀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기차에서 내리며 유진은 가방 속에서 메모를 꺼냈다. 작은 글씨로 적힌 주소는 여전히 낡은 종이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야.” 유진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걸음씩 과거로 향했다.
이곳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한 초대장이었다.
어머니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지 유진은 알 수 없었지만 더는 과거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 싶지 않았다.
부산에서 기대에 부풀어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려 했던 유진은 용호동의 바닷가 연립주택에서 어머니의 사촌언니를 만났지만, 그녀로부터는 더 이상의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딸이 있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는 서울에 있다고 들었는데...”
유진은 어머니의 사촌언니라는 분의 말을 되새기며 고민에 잠겼다.
실망감을 애써 감추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무거웠다. 바닷가로 향하며 유진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엄마는 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걸까? 나를 잊어버리려 한 걸까, 아니면 나를 보호하려 한 걸까?’
유진은 모래사장에 앉아 한참 동안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은 변함없었지만, 부산에서는 더 이상 찾을 방법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 유진은 고개를 들어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잔잔하고 아름다웠다. 해 질 녘, 수평선 위로 붉게 물든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노을에 물든 붉은빛이 반사되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저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좋을까?'
기차 안에서 유진은 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민아, 엄마를 못 찾았어. 사촌언니라는 분을 만났는데, 엄마가 서울에 있다고 하셨대.”
정민은 유진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럼 서울에서 다시 찾아보자.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 알아보자, 날씨가 쌀쌀하니까 어서 집으로 와.”
“응, 고마워. 어머니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 줘.”
“그래, 걱정 마라.”
정민과의 대화는 유진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