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선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너의 이름은?
처음엔 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냥 ‘엄마’였기에...
수없이 많은 역할속에 묻힌 채, 꿈을 미루고,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하고, 내 시간을 나눠주고, 감정을 눌러가며, 나는 참 오랜 시간 ‘누군가를 위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한다.
어릴 때, 친구들이 불러주던 이름, 젊을 때, 회사 동료들이 불러주던 이름, 무언가에 설레고, 무언가를 원했던 젊은 나날들의 나. 잊었지만,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예체능을 좋아했던 나는 “그건 쓸모없는 일”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관심을 접었고, 트렌드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목표를 정해야 했다. 결국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나름의 성실함으로 10년 넘게 일했지만, 여전히 내 삶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듯 떠돌았다. 누군가 칭찬을 해도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먼저 들려왔고,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세상은 순리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혼자 어딘가 다른 공간에 있다가 돌아와 합류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처럼 자란 아이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부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한 채 아이치료에 전념하면서, 문제는 나에게 있음을 알고 부터이다.
그런 나에게 변화가 찾아온 건 아이를 키우고, 아이의 감정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나 역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랐다. 기쁨을 표현하는 법, 슬픔을 드러내는 법, 화가 났을 때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내면을 돌보기 위해 상담을 받고,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내 마음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무서웠다. ‘이대로도 괜찮은데’라는 핑계로, 다시 익숙한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싶을때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를 변화시켜야 했기에 아주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 보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는건 싫다고 말해보기, 내가 좋아하는 옷 사입기, 하고 싶었던 말 적어보기 등 그것이 비록 소심하고 서툴렀지만, 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50년만에 표현해보는 여러감정들은 마치 굳어버린 근육을 처음 움직이는 듯, 어색하고 때로는 통증까지 동반했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싫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내뱉었을 때,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작은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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