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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브리나 Jun 10. 2021

나는 참 너를 많이사랑했나 보다.

잘못된 것을 이제야 알아간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자가격리가 시작됐다.

2주 동안의 철저히 나와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작은 존재와의 시간

내 작은 존재가 허락되는 곳을 알아보고 알아보고 정말 이 잡듯이 찾아보고 예약한 자가격리 가능 Air B&B는 사진 보다 작은 옥탑방이었지만

나는 해를 쬘 수 있고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됐다.


2주간의 답답한 자가격리 시간이 나를 돌아보고 감정을 정리할수있는 좋은 기회라고 애써 애써 나를 설득해본다.



1.

보건소를 다녀오고 첫 입성한 옥탑방은 내 처지 같았다.

지저분하게 쓰레기가 나부끼는 작은 옥상

좁고 좁은 주방과 오픈형의 화장실 커튼 하나로 가려진 샤워실

그리고 침대 하나 작은 식탁 하나 있는 작은 침실

속도 답답한데 눈에 보이는 것들은 더 작고 답답했다.

그래서 난 수시로 나갔다. 어차피 단독으로 사용해서 아무도 오지 않는 옥상문을 잠그고 

아직은 추운 칼바람을 그냥 맞으며

나는 낮이고 밤이고 그저 나가서 멍하니 빽빽한 건물들을 바라봤다.

신기하게 날이 맑은 날 빽빽한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노을은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똑같이 아름다웠다.

노을을 바라보다가 멀리서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이면

나는 내 옆을 지키고 앉아있는 작은 존재에게 읊조렸다.

"저 빌딩 너머엔 너와 내가 그리워하는 그 존재가 있겠다. 그립다. 너무 보고 싶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는 우울감과 억울함 그리고 갑자기 왁 하고 터져 버리는 울음을 나는 그저 다 뱉어냈다.

아무도 없고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서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보면 늘 퉁퉁 부어 눈도 안 떠지는 괴물이 있었다.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늙은 여자.

울상.

주름 투성이.

울퉁불퉁한 얼굴.

못났다.



2.

한국땅을 밟은 다음 

이상하게 마음은 편해졌다.

그런데 억울함과 화, 그리고 지옥 같은 시간들이 계속해서 맴돌기 시작했다.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징그럽게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TV를 켜 두고 즐겨보던 프로그램에 억지로 집중하려 해도 나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 울고 있었고

작은 존재와 함께 뛰어보려 크게 음악을 들으며 폴짝거려봐도

주저앉아 꺽꺽 대며 나는 울고 있었다.

가여운 내 작은 존재는 내가 꺽꺽 대면서 울음을 쏟아낼 때마다 조용히 내 품에 안겨오며 나를 위로해줬다.

나보다 더 답답한 격리 시간일 텐데 짜증 한 번을 내질 않는다.

낯선 한국땅에 처음 온 그 존재는 내 옆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나를 지켜주고 위로해줬다.

혼자였다면 내 작은 존재가 없었다면 긴 2주간의 홀로인 자가격리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암울했고 슬펐고 우울했다 

추억이 아닌 아픈 기억들이 자꾸만 떠오르고 또 떠올라 화가 났다.


4.

조금씩 계획이 세워졌다.

먹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밥을 먹고 체하지 않기 시작했다.

커피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에 웃기도 했다.

홀가분한 기분이 찾아왔다.

사방이 막히고 사방에서 날 비난하던 그곳이, 그 사람과 더 이상 함께가 아니라 것에 안도감이 생겼다.

얼굴을 살피고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내 작은 존재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고마움과 미안함이 앞으로의 계획으로 바뀌어갔다.

베트남 에선 구하지 못했던 영양제들을 주문해 먹이기 시작했고,

나보다 더 답답할 작은 내 존재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빚을 진대도 너 하나만큼은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내가 조금 더 힘들더라도 너는 꼭 내 옆에서 행복을 느끼게 해 줄게

그리고 남아있는 또 하나의 내 존재의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언젠가 우리는 또 만날 거니까

반드시.


5.

애써 추억할 것을 찾아본다. 

그리운 게 아닌지 한번 뒤돌아본다.

왜 그렇게 된 건지 계속 곱씹어본다.

한바탕 악을 쏟아내고 다시 가라앉는다.

다시 시작될 인생에 희망을 느껴보려 한다.

뭔가 잘될 것 같아 라고 암시해본다.

다시 무너진다.

안 좋은 일만 겪었으니 내 인생도 좋은 일이 올 거야 라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인다.

조금은 희망이 있는 것 같다.

살짝 기분이 나아진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혹시나 남아있는 흔적을 찾아 지운다.

지쳐 잠이 든다.

악몽을 꾸고 깨어나서 멍하니 그 악몽을 다시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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