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정확 간결하게
모든 게 처음인 육아지만 유일하게 경험한 종목이 있었으니 바로 기저귀 갈기다.
조카들 똥오줌 좀 치워 본 삼촌 경력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기저귀를 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리원에서의 퇴원 첫날
호기롭게 기저귀 한 장을 뽑아 아내를 앞에 두고 시연에 나섰다.
우선 기존 기저귀 밑에 새 기저귀를 깔고 기존 기저귀를 제거한다.
혹시 모를 분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엉덩이가 습하다면 충분히 말려주고 로션도 발라주는 게 좋다.
퇴원수속으로 기저귀 갈아 줄 시기를 놓친 제니의 엉덩이는 한껏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자세를 낮추어 입풍선 바람을 정성스레 불어준다.
엉덩이를 토닥이며 바람을 불어넣는 그때
눈에 뜨끈한 물줄기를 쏘이고 이내 알 수 없는 액체로 얼굴이 범벅이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숨 넘어가는 아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니가 시원하게 오줌을 갈긴 것이다.
그것도 아빠를 본 첫날 얼굴에 제대로 한 방.
정말 예상 밖의 전개였다.
동족으로서 남자아이야 조준사격이 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여자아이의 오줌이 그렇게 물총으로 쏜 듯 하늘을 향해 분사 가능하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그 뒤로도 두 번 정도의 총상을 더 입었고 그제야 나는 기저귀 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
기저귀 갈기의 핵심은 신속/정확/간결이다.
락앤락 반찬통을 여닫을 때의 느낌으로 탁탁탁.
망설임이 없어야 하고 한 번의 동작으로 끝나야 한다.
찍찍이 밴드는 아무 데나 달라붙기 때문에 검지와 약지를 한껏 벌려 충분한 공간을 유지해 주는 게 좋다.
안 그러면 자칫 다리에 감기고 대변일 경우 끔찍한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참고로 대변은 최대한 깔끔한 상태로 기저귀를 벗기는 게 중요한데
벗길 때 기저귀 안쪽 상단 부분으로 닦아낸다는 느낌으로 쭈욱 그어 내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무분별한 물티슈의 낭비도 막을 수 있다.
기저귀는 무엇보다 제 때 갈아주는 게 중요한데
그 타이밍을 모르겠다면 무조건 자주 갈아주는 게 좋다.
이론상으로 기저귀는 젖으면 바로 갈아줘야 하지만
요즘 기저귀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한 두 번의 소변은 뽀송하게 버터 주는 듯하다.
기저귀가 젖으면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다지만
다행히 제니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소 둔감한 엉덩이가 아빠의 수고를 덜어 주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새벽에 기저귀를 갈다 잠이 깨는 아이라면 그냥 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대신 자기 직전 기저귀를 갈 때 비판텐 크림을 듬뿍 발라주자.
바르면서 손에 남은 크림은 기저귀 안면에 쓱쓱 닦아 주는 센스도 잊지 말자.
초보 아빠에게 기저귀 갈기란?
하루 평균 10번 정도 반복되는 지루한 루틴이지만
토실토실 허벅지와 엉덩이를 찔러보는 재미가 쏠쏠한 일.
그럼 이만 또 기저귀 갈러~
유튜브: 그놈 김조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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