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아르 Feb 25. 2024

짐월리스의 <회심>

1. ‘회심’ 혹은 ‘회개’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학생 때 갔던 수련회에는 매번 종이에 죄를 적어 십자가에 달아 놓거나 불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죠. 진홍같이 붉은 내 죄를 눈처럼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요. 조금 더 성숙한 메시지도 듣습니다. 회개는 과거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거기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삶의 방향이 과거와는 다르게 하고 다른 가치관과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요.


2. <회심>이라는 책 제목에서 이런 내용을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짐 윌리스는 <회심>에서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개인차원의 회개와는 다른 '행동과 위치'에서의 돌이킴을 요구합니다. 


3. 저자가 소저너스(sojourners)의 발행인임을 알고 '아하'했습니다. 소저너스는 사회 정의에 관심 있는 굳이 분류하면 ‘복음주의 좌파’의 대표적인 잡지이거든요. 월리스는 70년부터 기독교의 사회 책임을 강조하는 운동을 해왔고 75년부터 소저너스 공동체를 만들어 이끌고 있습니다. 


4. 죄의 깨달음과 반성, 그리고 개인의 영혼구원에 머무르지 않는 회심은 무엇일까요? 단지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삶 나아가 ‘위치’의 변화를 뜻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all to Conversion"입니다. 우리를 향한 부르심은 회개(Repentance)를 넘어선 변화(Conversion 혹은 Transformation)를 요구한다고 월리스는 강조합니다. 회심은 회개 더하기 신앙입니다. "회개로 시작한 회심은 신앙으로 나아간다. 회개로 부르심은 자유를 향한 초청이자 신앙을 위한 준비다.... 회개는 우리의 죄를 보고 거기서 돌아서는 것이다. 신앙은 예수를 보고 그분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다. 회개와 신앙은 함께, 회심을 구성하는 두 움직임을 형성한다."  


5. 월리스는 회심은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부제인 "Why Faith Is Always Personal But Never Private"이 말하듯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로부터 분리된 회심이라는 개념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변화가 없는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드러나지 않는 회심은 "우리를 예수의 삶에 접붙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우리의 삶에 접붙이는" 교활한 자기애일 뿐이라 비판합니다. 


6. 월리스가 말하는 실제적 변화는 무엇일까요. 윌리스는 크게 두 가지를 주문합니다. ‘부’에 대한 돌이킴과 ‘힘’에 대한 돌이킴입니다. 

 

7. 부에 대한 월리스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그는 '부'가 노력의 결과나 가난한 이들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로부터의 이동, 결국 착취와 억압의 결과임을 인정하라 말합니다. 또한 (이 책의 주독자일 백인 중산층 이상인) 많은 이들이 가난을 모른다고, 가난한 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감각이 없다고 비판합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가난한 자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귀 기울이고, 배우고, 이해하기를 시작할 수 있겠는가?" 질문합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 소유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문제이지 소유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이에 대해 월리스는 "형제자매들이 궁핍한 가운데 있는데 부를 축적하는 것은 교회의 삶에서 죄의 증거"라며 우리는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8. 힘에 대한 태도 또한 바뀌어야 합니다.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정당한 폭력'을 옹호합니다. 이에 반해 월리스는 평화가 우리의 절대가치여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선한 군사행동은 없습니다. 모든 전쟁은 악이며, 전쟁을 없애기 위해 크리스천은 행동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 만들기'는 진정한 회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안전을 진정으로 발견하는  자들만이' 거짓안전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가난한 자들 사이로 들어가야 하듯, 우리는 전쟁 희생자의 얼굴을 직면해야 합니다.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할 때 우리 마음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이런 삶이 가능할까요? 월리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 연합할수록 갈등은 더 깊어지겠지만 기쁨은 커진다고요. 구체적인 방안으로 월리스는 공동체와 예배를 제시합니다. 소저너스 공동체를 이끄는 월리스로서 공동체를 제시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예배'는 의외였습니다. 월리스는 예배를 통해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 안에서 뿌리 내림을, 하나님이 낮고 고통당하는 자들 사이에 임재하셨음을, 우리의 공적 활동이 사랑과 진리의 능력에 기반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말합니다. 또한 예배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10. 월리스의 메시지는 솔직히 불편합니다.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신앙을 개인의 영적차원에 제한한 채 성공과 편안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월리스의 주장은 극단적으로 보입니다. 좌파, 누구에게는 좌빨로 불릴만합니다. 그럼에도 월리스의 주장과 그가 삶에서 보여준 행동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고 그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기에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철저한 복음주의자입니다.           


11. 제가 읽은  건 IVP에서  모던 클래식스 시리즈로 나온 2005년 개정판의 번역입니다. 각주나 해설 빼면 250쪽 정도인데, 진도가 엄청 안 나갑니다. 제 책에는 거의 매 쪽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메시지의 묵직함도 있지만, '저렇게 살 수 있어? 난 자신 없는데'라는 부담감이 더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부담감은 진정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부르심에 응답함이 어떤 책임을 포함하는지에 대한 결코 피해서는 안 되는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 전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