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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go Sep 01. 2020

미움이 차오를 때

팀장님이 저만 빼고 커피를 사주셨어요

나는 작년에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은 집에서 놀고 있는 백수다. 남자친구가 있는 핀란드로 이민을 생각하며 결정한 퇴사이다. 하지만 코로나와 함께 남자친구의 인턴 근무 정규직 전환이 불발 되면서 나도 한국에 남게 되었다. 그 동안 모아 놓은 돈에 손을 대지 않기 위해 크고 작은 알바와 함께 영어 과외 일을 해왔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한 달하고 보름 전에 그 일도 접게 되었다. 



금방 진정될 줄 알았던 코로나 사태가 한 달만 더, 몇 달만 더, 어쩌면 내년까지도. 라는 얘기가 나온 지 꽤 되었다. 이제는 슬슬 숨이 막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올해 초부터 그냥 한국에서 취업을 해서 경력을 쌓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간간히 고개를 드는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생활비 통장 잔고는 나에게 당장의 현실을 보라고 일러주었으므로, 단기 알바에 이력서를 넣었다. 운이좋게도 나는 알바에서 높은 확률로 면접 연락을 받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중에 이에 대해서도 글을 써보면 좋겠다. 이번에도 그 진심이 통했는지 바로 꽤 좋은 조건의 제약회사 사무직 알바를 구하게 되었다. 






오늘이 그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약품의 변경 세부사항 데이터를 새로운 형식의 엑셀 파일에 맞춰 가공하는 동시에 회사 시스템 상의 데이터와 비교하여 정정하는 일이다. 첫날에는 이 정도면 할만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일을 끝마쳐야 하는지 모르니 조급한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언제부터 일터에서 진짜 문제가 '일'이었던가?



문제는 '사람'이다. 나를 담당하는 사원님 위로 팀장님이 한 분 계신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조근 조근 말하는 파워가 느껴지는 여자분이시다. 전에 밑에서 일했던 팀장님은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려는 게 모두에 눈에 보여 오히려 모두의 미움을 사시던 분이다. 따라서 나에겐 알바일지라도 새로운 스타일의 팀장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근데 문제는 이 분이 나를 투명 인간 취급을 하신다는 거다. 출퇴근 시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무실 사람들에게 커피를 쏘신다고 나가신 분이 내 커피는 쏙 빼놓고 사오신 것이 아닌가. 너무 당연하게도 사무실 사람들도 내 존재와 커피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런 투명 인간 취급은 또 처음이라 이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야 하는지도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친구에게 카톡을 했다. 친구는 나를 대신해 쫌생이 같은 팀장이라며 대신 화를 내주었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결국에 나를 향하는 검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털어내려 했지만, 이 생각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30분 내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전히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알바로서의 분수를 깨닫지 못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면서 문득 친구들과 독서 토론 모임에서 나눴던 얘기가 생각났다. 우리는 책 얘기를 하다 샛길로 빠져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된 '엄마'와의 갈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모임 친구들 모두 취업 준비생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엄마의 걱정 어린 진심이든, 실망스러움의 표출이든 일상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친구의 엄마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 '나는 엄마가 나를 위해서 바뀌길 원치 않는다'고 대답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바뀌길 원한다면 그것은 

1) 그 사람이 행복을 위해서 이거나 

2) 그 사람이 내 자율성을 침해한 경우이다.


내가 엄마가 바뀌길 원한다면, 그것은 엄마의 강요하는 태도가 엄마 스스로 남들에게 쉽게 부탁하지 못하는 습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참았다가 용기를 짜내어 하는 부탁(혹은 강요)에 대한 상대의 거절은 엄마를 더 아프게 함을 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집까지 오는 10분 남짓의 길을 걸으며 이 생각이 미움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잠시 접고 오늘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커피를 받지 못한 것이 내 자율성을 침해했나? No. 나는 그 팀장님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바뀌길 원하는가? No. 



그분은 객관적이나 주관적으로 생각해봐도 마음 속의 미움이나 비뚤어짐으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안타까움이 들었다면 처음부터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진 미움이라는 감정으로 그녀가 바뀌길 바랄 필요는 없었다. 그 미움을 만든 주체가 나라면 버리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소중한 가족들이 반겨주었다. 언니와 아버지가 휴가여서 오늘 하루 종일 쉬면서 장도 봐 놓고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요리도 해 놓은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 메뉴 계획이 세워 놓았던 아빠는 입이 근질근질 거렸지만 신나게 돌아올 막내딸을 위해서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만 생각하며 살기도 짧은 인생이다. 아름다운 것만 신경 쓰며 살기도 짧은 인생이다. 마음 속에 미움을 넣어 놓고 형체도 없는 미움의 대상을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쓸 시간이 없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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