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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Mar 12. 2022

믿음이 약이다

누군가를 간병하는 것은 이리도 어려운 일이구나. 한 시간마다 루퍼트의 호흡 수를 체크하고 새벽과 낮을 가리지 않고 약과 밥을 주는 일, 그리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일... 이렇게 말로 나열하니 별 거 없어 보이지만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근 삼 주동안 잠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다. 틈틈이 쪽잠 자는 정도로 겨우 버티는 중. 하지만 체력이 중요하니, 먹을 것이라도 제대로 먹는 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먹는 듯하다만.



지난주 일요일까지만 해도 루퍼트는 급작스럽게 좋아진 컨디션에 자신도 놀랬는지, 낮시간 동안에는 소리소리를 질러대면서 산책엘 나가자고 했다. 그리고 콧줄로 약과 밥이 들어가는 것을 상당히 자존심 상해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콧줄을 발로 밟고 당기면 목구멍에서 빠지는 것을 배웠는지, 지난 화요일 아침엔 완전히 빼버린 것이다. 병원에 가서 콧줄을 다시 달면 그만이긴 한데, 예민한 상태에서 특히 폐수종이 더 올 가능성이 많은 루퍼트에게 다시 콧줄을 달게 하는 것은 큰 리스크가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과 밥, 그리고 전해질액을 주사기로 입에 넣어야 했다.


사실 주사기를 입 옆에 가져다가 쏘면 그만이긴 한데, 손에 익지도 않았을뿐더러 혹여나 약을 투여할 때 엉뚱한 곳에 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심했다. 그래서 유일하게 녀석이 스스로 먹는 간식인 고구마에 약을 개어 동그랗게 빚어 주었고 그것을 잘 받아먹었다. 문제는 다음날 수요일이었는데, 이렇게 약을 두 번 주고 나니 바로 폐수종이 온 것이다. 사실 왜 다시 폐수종이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콧줄이 느슨해져서 다시 달러 병원에 두 번이나 간 것이 루퍼트를 흥분시켰다던지, 그것이 폐수종을 부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심장기능이 저하되어 지속적으로 폐에 물이 그냥 차는 중에 더 악화되어 처방받은 약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고구마에 약을 섞어 준 것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내 추측이기도 하고 내 바람이기도 하지만(왜냐하면 심장기능이 저하된 상태보다는 나으니까) 어쩌면 약을 주는 방식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구마에 약을 섞어서 준 그날의 대변에는 고구마가 통째로 나왔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루퍼트는 그날 약을 두 번 못 먹은 것이고 그 때문에 다시 폐에 물이 찬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니, 결과적으론 심장이 제기능을 잘하지 못하여 생기는 일은 맞는 것 같구나...)


여하튼 그날 이후에는 좀 더 집중적인 케어가 필요했다. 호흡수는 정확히 한 시간 간격으로 기록하고, 체중이 자꾸 빠지는 바람에 칼로리 계산을 정확히 하여 강급해야 했다. 무엇보다 주사기로 약을 주는 것이 너무 자신 없어서 처음엔 약을 물에 조금 섞어 개어 손가락에 발라 입에 넣어주었다. 처음은 잘 받아먹다가 나중에는 극도로 싫어하여 억지 먹이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하면 심장이 빨리 뛰고, 그러다 보면 바로 폐수종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밥을 먹일 때 주사기로 강급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없어 보였고, 이제는 정말 내가 용기를 내 주사기로 약을 줄 때가 온 건가 싶었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잘 줄 수 있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 불안감은 루퍼트에게도 전달되었는지 약을 줄 때 녀석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러더니 결국 약이 입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둥이 털에만 다 묻은 것이다. 아, 정말 어떻게 하지.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폐수종이 올 텐데. 머릿속이 하얘지고 이성적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지만 숨 크게 한 번 쉬고, 대략 내가 손실 한 양이 2/3 정도 인 듯하니, 그 정도의 약을 다시 주사기로 강급해 보자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시 물을 끓이고 약 봉투의 약을 조금 덜어내서, 액상 상태로 만들고 주사기에 넣었다. 루퍼트를 한 팔에 감싸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강급했다. 너무나 다행히 잘 받아먹었고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매 번 약과 밥을 줄 때마다 주사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런 태도는 루퍼트에게도 전해지는 모양이다. 이후엔 완전히 나를 믿고 자신을 내게 맡기는 행동을 보였고 우리는 정말 팀이 되어 병마를 함께 이겨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검사 결과는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폐에 물도 없고, 콩팥 수치도 정상이며, 전해질 수치도 정상이라고.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될 것이다. 폐수종 때문에 심장 검사를 아직 하지 못했다. 심장 상태를 알아야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다.


루퍼트는 오늘 매우 기분이 좋아 보인다. 어쩐지 오늘의 루퍼트 주변은 가벼운 핑크색이다. 늘 약 냄새만 풍기던 루퍼트의 몸에서는 다시 머스크 향이 난다. 삐들삐들 말라 있던 코도 다시 촉촉해졌다. 무엇보다 늘 기운 없어하던 얼굴이었는데 오늘은 웃음을 지었다(개들이 웃을 땐 입꼬리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편안해 보이는 루퍼트를 바라보니 나도 마음이 좋아진다. 이제껏 나는 너무 많은 걱정을 해 왔고, 밀려오는 부정적인 생각을 이기지 못해 아직 슬퍼할 일이 아닌 것에 슬픔을 표하지 않았어 생각이 든다.

루퍼트를 바라보며 제발 떠나지 말라고 한 것도 녀석에게 커다란 부담을 준 것일 수도 있다.

쓸데없이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정말로 도움이 되는 긍정적 마음을 갖는 것이 반려동물을 간호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라는 것. 사실 과한 걱정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서로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면 잘 돌볼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녀석들도 반려인을 믿고 따를 것이다. 동물들도 생각할 줄 알고, 나름의 판단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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