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하늘에서 마치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내내 쏟아져 내렸던 적이 있었다. 보통 6월 즈음에 찾아오는 장마 때 내리는 비의 양은 많아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내린 적은 없었기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게 바로 기후 변화인가 보다, 지구 온난화로 날씨가 미쳐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위기가 인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 습관은 바뀌었나? 난 잘 모르겠다. 당시 팬데믹 첫 해 여름이었고 바이러스 위기를 직접 겪으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환경문제만큼은 '아직은 위기 까진 아냐'라며 방관하지 않았는지.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이 지구를 덮침과 동시에 플라스틱과 같은 일회성 물품들의 소비가 증가하지 않았던가. 마스크가 그 대표적 소모품이고, 사회적 격리로 인해 외식을 할 수 없어 배달음식 주문량이 증가했다. 그때 사용되는 포장자재 같은 것들. 정말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쓸 수밖에 없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미워해야 하지만 사랑해야 하는 구조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일 당장 지구가 불지옥으로 뒤덮여 모두가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양이 증가하여 지구가 더 더워지면, 빙하가 녹을 것이다. 지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탄소는 얼음이 녹으면서 서서히 공기 중 농도가 짙어지겠지. 그러다 보면 온난화가 가속화되어 기후는 변할 것이고, 많은 생물들은 더운 환경을 적응하지 못해 천천히 하나하나씩 멸종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인간에게 부족함 없이 제공되어 왔던 식량도 부족해질 것이고, 식자재 가격은 상승하여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은 충분한 음식 섭취가 이루어지지 못하겠지.
동식물에서 추출하여 얻어내는 의약품의 shortage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위기가 찾아오면 그 흔한 감기약 하나 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가난한 자들은 사라지고 돈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다가, 더 이상 돈으로 해결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가게 되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바뀌지 않고 지속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서 겪고 있는 이상 기온을 마주하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심각하지 않다'라며 방관하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 90년대 환경 콘서트 주제곡이 '내일은 늦으리'였었지. 오늘 지구 생각하는 것도 이미 늦어버렸는걸. 아직도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야 하고, 시즌마다 나오는 신상을 질러야 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회용 기저귀를 소비해야 하고, 나는 우리 강아지 루퍼트 병간호하면서 배변패드를 써야 하고, 루퍼트의 상태를 검사하기 위해 플라스틱 주사기를 써야 하고, 이 세상에 아픈 강아지를 간호하는 집은 우리 집 만이 아닐 테고.
나의 삶이 풍족해질 때 다른 한 곳에서 누군가가 착취당하고 있고.
내일부터 쏟아질 장맛비 가릴만한 우산 하나 사려해도 또 그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내 어찌 no more plastic!이라 세상을 향해 감히 외칠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