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 공항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물론 이전만큼 붐비진 않았지만 그래도 활기찬 풍경이다. 이 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로봇 안내원이 곳곳에서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멋지다며 말을 거는 모습이다. 나는 그 로봇 안내원이 너무 귀여워서 함께 사진도 찍고 괜히 말도 걸어보기도 했다. 대화 수준은 내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안내판에 텍스트로 단순한 응답 수준에 머물렀지만, 어쩐지 새로운 경험에 설레기도 하면서 앞으로 로봇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진화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감정은 여행을 괜스레 더 들뜨게 했다. 사지도 않을 명품을 구경하면서 늘 진한 향수 냄새가 공기에 퍼져있는 면세장을 서성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았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났고, 현지 먹거리를 온종일 입에 달고 다녔다. 잘 알아듣진 못하지만 익숙한 현지 언어가 어쩐지 편안하다. 그러나 작업 생각에 푹 쉬지는 못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모처럼 보내는 휴가인데 못 놀면 나만 손해다 싶어서, 펑펑 놀아보기로 했다. 카메라도 들고나가지 않았다. 그림도 안 그리고 글도 안 썼다.
그렇게 몇 주 있다가 귀국하니 하루 종일 작업만 들여다보던 내 일상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일만 하던 태도는 잘못된 거 아니냐,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작업량이 있건 없건 무엇에 쫓기듯 일만 하는 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겨울이 다가왔기에 낙엽이 울긋불긋 하구나. 가을밤 들이닥친 소나기에 투명하게 젖은 단풍 바라보며 예쁘다 말해줄 수 있는 여유 정도는 가져도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살면서 추구하는 것이 어쩌면 책에 있는 게 아니라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마음 한편에 작은 빈칸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잡념 와중에도 여전히 나는 예술이 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표면 위로 떠오른다. 눈앞에 있어도 손을 뻗으면 닿을락 말락 한 추상적 실제. 그리고 오직 나만 바라보는 것이기에 경험하는 고독함.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오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