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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ism Nov 04. 2024

'본인 희망대로'가 두려운 아이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걸요....

 나의 어릴 적,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장래 희망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이른바 “진로지도 상황”을 기록하는 칸에는 특기 또는 흥미를 적어야 했고, 진로 희망과 특기 사항을 입력하게 되어있었다. 특이한 점은 “진로 희망”은 학생과 학부모 두 칸이 따로 있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미대입시생이었던 나는 디자이너를 적어냈다. 딸 미술 시키겠다고 목돈을 퍼붓고 계셨던 우리 부모님도 당연히 같은 직업을 적어 넣으셨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녀와 부모가 한 마음 한 뜻인 것은 오히려 드문 일이었다. 학생 희망은 연예인인데 학부모 희망은 의사라거나, 학생 희망은 사회복지사인데 학부모 희망은 판검사처럼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 나란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지금 보면 꽤 우습기도 하지만 그 시절엔 아주 흔한 일이었기에 그렇게 웃기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 의사처럼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특정 직업인이 되길 원했었다. 부모들은 그런 장래 희망을 막무가내로 종용하면서,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기 일쑤였다. 때문에 이 시대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란, 주로 부모의 기대가 너무도 크거나, 자신과 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와 장래 희망을 두고 불화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부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건 당연한 걸까. 시대가 변하면서 그런 부모가 정말 많이 사라졌다. 아마도 세상이 바뀌어 부모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판검사보다, 연예인이 더 잘 사는 게 확실해지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공부 공부 하던 부모세대가, 그렇게 공부 공부에 매달렸던 수재들은 별 볼 일 없는 회사원이 되었고, 자기주장 강하던 개성 넘치는 학생들이야말로 큰돈도 만진다는 걸 알게 되면서였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판사 검사 의사 회계사"를 외치는 부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특정 직업들로 가득했던 '학부모가 바라는 자녀의 장래희망'칸은 "본인 희망대로"로 대동단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열에 아홉이 모두 "본인 희망대로"를 적다 보니 굳이 2칸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고교 생활기록부에서 장래 희망 ‘학부모 칸’이 아예 사라지게 되었다. 


 진로 희망을 두고 부모에 대해 투쟁을 해야 했던 이전 세대들은 “너희 부모님은 너희하고 싶은 거 밀어줘서 좋겠다”라며 시대가 좋아졌다 한다. 자녀의 꿈과 희망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부모! 이전 세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답게만 흐른다면 참 좋겠는데 "네가 원하는 것을 하렴" 하고 모든 가능성을 맡겨준 부모를 대하며... 아이들에겐 새로운 스트레스가 생겼다. 


 그건 바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너 판사해, 검사해, 의사해 정해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그건 싫다며 반항이라도 하겠는데, 엄마 아빠가 ‘뭐든지 네가 원하는 걸’ 하라고 하는 거다. 한없이 자애롭게 바라보며 키를 쥐어주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부담을 느낀다. 자신을 알아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라도 알 수 있을 텐데 여가 시간이라는 것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주입하고 소비하는 시대를 사는 아이들이 자신을 고민할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뭐 하느라 바쁜지 몰라도 아무튼 지간에 모두가 바쁘다고 말하며 살아가는 한국에서,  흘러가는 대로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학원에서 하라는 대로 살다 보면 깊이 있는 공부를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 뭘 원하는지 여전히 모르겠고 점점 더 모르겠는데 ‘장래’는 계속 가까이 다가오는 기분인 아이들에겐,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이 가장 무섭다.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는 사람에겐 "넌 뭘 원하니?"라는 질문이 가장 폭력적이다. "네 꿈은 뭐니?"를 시도 때도 없이 묻는 어른을 대하여, 자신만 꿈이 없는 것 같은 불안을 걸으며, 그놈의 "본인 희망대로"가 두렵다. 


 부모가 원한 삶을 사느라, 주어진 현실에 요구된 역할을 하며 사느라, 자신을 찾지 못했다며 서른에, 마흔에 모두가 자기 찾기를 하는 시대이다. 뒤늦게라도 "자기를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어른들이 너희만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너희는 "너희 자신이 돼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실은 본인들도 아직 자신을 찾는 중이면서 말이다. 어른에게도 어려운 것을 등 떠밀려 맡게 된 아이들이 "본인 희망대로" 살기를 기대하는 어른을 대하며 충만한 아이로 살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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