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할미 Feb 04. 2021

헌이랑 나랑

애는 없는데 육아는 해본 이모 이야기

 나는 이모다. 음... 이모는 본래 엄마의 자매들이 이모이지만 나는 자매는 없다. 흔한 아는 이모인 것이다. 아는 이모로써 조카는 꽤나 많다. 사회에서 만나 친해진 언니들, 학교 선배, 교회 언니 동생, 또는 남편 친구의 자녀들이지만 아줌마는 멀게 느껴지고, 이름을 부를 순 없으니 이모... 등등 나를 이모라 칭하는 이들이 참 많다. 

 나도 이모가 있다. 엄마의 여동생도 있도, 엄마의 친구, 엄마 친한 동네 아줌마 등등... 이모라는 이름은 참 신기한 것 같다. 아무한테나 붙여 사용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당에서도 직원분을 호칭하기 애매할 때 이모라고 하기도 하지만 나는 처음 간 식당에선 차마 이모라 부르는 게 어색해서 모두 사장님으로 승진시켜 드리는 편이다. 그런데 나도 이모다. 

 헌이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꽤 특별하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러하다. 헌이가 돌이 되었을 즈음 이 녀석의 아빠가 다른 지방에서 근무를 하게 되고, 나도 마침 이 녀석의 집 근처로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이 녀석과 이 녀석의 엄마와 동거를 하게 되었다. 아... 내가 얹혀살았다. 친한 사람과 같이 살지 않는다는 철칙이 나름 인생에 있었는데, 왕복 3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나의 철칙 따위를 버리게 해 주었다. 

 언니는 인정할지 모르지만 나름 언니는 그때 산후 우울증 비슷한 걸 겪고 있는 듯했다. 남편도 없는 집에 어린 아기랑 넓은 집에 덩그러니 있었으니... 더더군다나 한참 개발 중인 동네라 시내랑 좀 멀기도 했고, 언니는 본래 엄청 활발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헌이의 아빠가 나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어 인심 쓰는 척하며 내가 얹혀살게 되었다. 

 나는 본래 아이를 엄청 좋아하기도 했고, 외롭게 지내고 있었을 때였는데 따뜻한 온기도 좋았고, 언니가 차려주는 밥도 좋았다. 그리고 이 녀석이 은근 말을 잘 들었다. 겁이 많은 건지 이 녀석은 꽤 말을 잘 듣는 편에 속하는 아기였다. 내가 퇴근하면 아빠가 온 것처럼 뛰어나와주는 것도 신기했고,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 오면 나를 찾는 것처럼 들러서는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이 여간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나도 이 녀석을 참 예뻐라 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내가 결혼을 하고 이 녀석은 13살 사춘기 소녀가 된 지금까지도 잘 지낸다. (내가 이 녀석이라고 부르지만 여자 아이다.) 나랑 이야기도 꽤나 통해서 종종 힘들면 카페에서 둘이 이야기도 했다. 나름 내 고민을 심오하게 생각해 준다.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을 내놓지만 그게 위로가 될 때도 많다. 다만 역효과로 종종 자기가 엄마나 나랑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아직 귀엽다. 내 자식이 아니라 눈에 넣을 순 없지만... 안 보면 보고 싶고 궁금하달까? 내가 자기랑 나랑 있었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하니 허락해 줬다. 대신 가명을 써달래는 데 그게 헌이다. 다 커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있고 신기하다. 

 생각해 보면 헌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부모와 나의 관계 덕에 13년을 함께 했다. 내 인생에서도 13년이면 절반에는 못 미치지만 꽤 긴 시간이다. 헌이도 많은 이모가 있지만 (언니는 세자매다.) 나를 유독 따라줬었다. (지금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종종 헌이가 세상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 중에 내가 함께한 일도 많이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이 녀석과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당분간 잘 써볼까 싶다. 잘 기록해 뒀다가 너 남자 친구이나 결혼할 사람 데려오면 보여줄 거야. 이모가 너의 흑역사도 많이 알고 있는 거 알지? 

작가의 이전글 널 만나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