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만날수 있겠지?
나의 시간은 근심과 걱정을 원료로 흘렀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 진행이 잘되고 있는 건지 하는 걱정과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또 안되면 어쩌지?' 하는 근심으로... 손에 잡히는 일도 없고, 그저 방바닥을 뒹굴며 근심과 걱정을 바닥에 도배하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인공수정 2번에 신선 시술 7번, 동결 시술 1번까지. 총 10번의 시술을 시도했다. 2018년 친한 동생의 임신소식과 함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먼저 받아보라는 권유에 시작되었다. 그저 임신이 유리한 배란일을 알고 싶어 방문한 것이었는데 점점 나의 상황은 심각해져 갔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마치 시험관 시술이 아니면, 아니 오히려 시험관 시술로도 임신이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동안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했다가 아기집을 보지 못한 화학적 유산만 4번, 아기집을 보고도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아 소파수술을 하게 된 경우만 2번, 그 어떠한 반응도 보지 못한 경우가 4번. 총 10번의 시험 결과를 받아 들게 되었다.
점점 회차가 늘어갈수록 여러 가지로 내 생각이나 모습들이 달라진 걸 느끼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내가 알게 된 지식으로 의사 선생님을 괴롭혀 갔다. 내가 약이나 주사를 마치 처방하기라도 할 듯 이런저런 사례들을 들이밀며 선생님을 괴롭혔고, 점점 진료시간도 늘어만 갔다. 그렇지만 간절한 그 마음을 누구보다 위로해 주시며 묵묵히 받아 주시고 좋은 방법을 함께 찾아 주셨다.
처음과 가장 달랐던 건 테스터기를 보고도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테스터기가 진하고 선명해도 화학적 유산이 진행될 수도 있고, 연하디 연해 흔히 매직 아이라고 해도 피검사 수치가 잘 오르면 문제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파수술 후에도 호르몬 수치가 바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서 테스트는 두줄이 나오기도 한다.)
남편에게도 점점 미안해져 가면서 부담스러워졌다. 나에게 힘을 주려고 "잘 될 거야." 하는 긍정적인 말들까지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테스터기를 보고 기대할까 봐 피검사를 하기 전까진 혼자만 보고 숨기기도 했다. 수술을 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힘들어하는 모습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마치 나 때문에 겪는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반대로 약을 먹는 방법이나 주사를 덜 아프게 잊지 않고 챙기는 방법은 점점 능숙해져 갔다. 카페에서 문의하는 글에 답도 척척 달아주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몇 회 차에 성공하셨냐는 질문엔 대답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선언하고서는 '한번 더...'를 외친 것만 벌써 세 번째이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지쳤다. 늘어가는 주사에 챙겨야 하는 약만 봐도 힘이 들었다. 왕복 3시간씩 운전해서 다니는 것도 너무 지쳐갔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임밍아웃을 할 때 사용하려고 주사기도 모으기 시작했다.
피검사 수치가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몇 주 뒤 초음파로 확인한 아기집은 난관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의뢰서를 가지고 방문한 대학병원에서는 당장 수술을 권유했지만 10번째 시술을 통해 만났다는 이야기에 이동할 수도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 대신 언제나 출혈이 보이면 위험할 수 있으니 바로 내원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다.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반대쪽으로 누워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해 두고 며칠을 보냈다.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곤 그렇게 옆으로 누워서만 지냈다.
간절하게 노력했지만 결국 출혈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용히 눈물을 감춰가며 한밤중에 응급실로 향했다. 몇 번이고 다시 초음파를 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아기집에 난황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아마도 정상적으로 크긴 어려울 것 같아요. 보내주고 건강하게 다시 임신을 시도해 보면 어때요?" 하셨다. 아... 건강한 임신?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점점 늘어가는 출혈로 어떠한 주사나 약으로도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수술을 마친 나의 손을 잡고 남편은 "더 이상 시험관 시술을 하지 말자."라고 한마디 했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했고 사실 직접 주사를 놓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더는 못 보겠어. 아기도 갖고 싶지만 나는 너를 잃을까 봐 너무 무서워. 더 이상 수술실에 안 갔으면 좋겠어." 그래... 아기도 우리가 행복하자고 갖고 싶은 건데 일단 행복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밍아웃을 하려고 모아둔 주사기를 쭉 늘어놔 보니 나도 대단하다 싶었다. 한꺼번에 버리려니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주삿바늘도 있고 해서 병원에 폐기를 부탁드리려고 들고 갔더니 폐기 통 한통이 가득 찰 정도였다. 주사를 버리며 내 미련도 함께 버렸다. 임신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나는 어떤 원인이 있어 시험관이 아니면 임신이 불가한 건 아니니 말이다. 그저 아가를 만날 운명이라면 내가 이렇게 애쓰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제 힘들지 않고, 애쓰지 않고 널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애쓰고, 힘내는 모든 난임인들에게 파이팅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