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할미 Mar 14. 2022

널 만나려고

쉬운건 없지. 그렇지만 널 만나고 싶다.

 모든 걸 중단했다. 때가 되면 당연히 해야 했던 건강검진이었다. 시험관 시술에 성공했다면 한해 쉬려고 했는데 결국 시험관 시술은 실패했고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것인데 지원이 되지 않는 항목까지 지불하고 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약들과 주사를 몸에 쏟아부었으니 한 번쯤 제대로 검사를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게 남편의 의견이었다. 결국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사를 받은 것 같다.

 원래도 건강한 편이 아닌지라 더 긴장이 되었다. 결과를 듣기 전날은 잠이 안 올 정도로... 결국 올 것이 왔다. 결과지를 설명해 주시다가 결국 진료 예약을 진행해 주셨다. "갑상선에 혹이 보여서 조직 검사해야 하고요, 단백뇨가 보여서 신장내과 진료도 따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혈압과 당뇨 수치도 치료를 요하는 수치에 도달되어 있어서 진료를 따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하나씩 집어가며 예약을 진행해 주셨다. 뭐라고 반발할 틈도 없었고, 더 질문할 기회도 없었다. "건강이 많이 나빠 있으세요. 시험관 시술하셨다 들었는데 임신이 힘든 건강 상태 일수 있요. 이번 기회에 치료를 먼저 진행하시고 하는 건 어떠실까요?" 그래...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이래야 내 인생이지...

 병원에 가면 내과, 신장내과, 초음파실, 피 검사실 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진료가 끝이 나면 품 안에 한가득 약봉지까지... 약 먹는 걸 잊어버릴까 알람을 맞추고,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해서 약봉지에 날짜도 써 두었다. 이제 약 챙기는 거 정도야... 전문가 수준이지!!

 여러 가지 몸이 나빠졌음을 알리는 수치들은 다행히도 조금씩 재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시험관 시술을 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난소도 나이가 들고 그만큼의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불안하게 했다. 치료에 한두 달도 아니고 꼬박 8개월이 소요되었다. 물론 심각하지 않고 약으로 치료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한 상황인데 내 몸을 돌보다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멀리 달아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결국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취미 생활들을 시작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나서서 조금씩 걷다 달리다 하기 시작했다. 이 취미는 여러모로 좋았다. 추운 날은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너무 좋았고 따뜻한 날엔 길가를 따라 펴있는 예쁜 꽃들이 있어 좋았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라디오 방송과 함께면 두 시간도 훌쩍이었다. 그리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 이야말로 일석이조였다. 그리고 우연히 공짜로 재봉틀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시간에 가서 한 달 내내 직선 박기, 곡선 박기, 지그재그 박기 요런 것만 하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선이 만들어지는 것만 봐도 재미있었다. 내뜻대로 되는 게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 이제는 토시도 하나 만들고, 낡아 헤어진 성경책의 커버도 뚝딱 만들었다. 물론 내 눈에만 예쁘겠지만 말이다. 선에 집중하는 동안은 잡생각도 걱정도 사라지고 시간도 훌쩍 지나가 하루가 짧았다.

 이런 나를 바라보며 남편은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함을 고백해 왔다. "아이를 너무 갖고 싶은 것도 맞는데... 당신 건강이 너무 망가졌던 것도, 늘 걱정에 눌려 있던 것도 너무 속상했어. 나는 당신이 원하면 그냥 지금처럼 취미 생활하고 즐겁에 둘이 살아도 좋아." 참나... 너무 착하고 사랑이 넘치는 남편아... 고마워. 그런데 길에 지나가는 아기만 봐도 반짝이는 너의 그 눈빛을 넌 볼 수 없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지만 결국 "아니야, 건강이 좀 나아지면 다시 해보고 싶어. 후회하고 싶지 않네."라고 이야기하고 끝을 냈다. 남편의 작고 귀여운 눈을 닮아도 좋다. 사랑 가득한 저 마음을 닮을 수 있다면... 남편의 길고 긴 허리를 닮아도 괜찮을 거야. 항상 감사할 줄 아는 그 마음도 닮을 수 있다면... 결국... 나는 오늘도 남편의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마음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꼭 닮은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