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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Oct 27. 2021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방황 중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30일이 넘었다는 알림을 받은지도 몇 주가 지났다. 알림을 읽으면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지금 쓸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난임 시술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10회를 진행했다. 나는 정부의 도움도 모두 소진했고 나의 경제적인 여유도 모두 소진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고 그저 평범한 부부들처럼 아이를 갖고 싶었던 건데 가지고 있던 것들을 소진해야만 했다. 심지어 남편이 유일하게 고집 피우며 갖고 있고 싶어 했던 차도 팔았다. 원래 고가의 차도 아니었지만 그나마도 유지하기 힘들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직장도 포기했고, 재 취업도 포기하며 3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 30대 후반의 대부분이 그렇게 없어져 버렸다.

 나와 같이 난임 시술을 하고 있던 언니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마치 죄인이라도 된냥 나에겐 말도 하지 못하고 다른 이를 통해 듣게 되었다.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내 앞에선 쉽게 자신의 축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축복받을 일을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는데... 나에 대한 배려겠지? 물론 한때는 다른 이의 임신소식이 나에겐 속상함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속상함을 넘어 좌절감으로 내 눈물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글쎄...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마치 태몽 같은 꿈을 꾸고 연락 오는 이들도 있다. 조심스레 "내가 이러저러한 꿈을 꿨는데 네가 보이더라. 이거 네 태몽 아닐까? 소식 없어?" 그만큼 나의 임신을 같이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고맙고 속상하다. "오~ 꿈이 멋지네 그 꿈 내가 살게." 하며 산 꿈도 벌써 몇 개인지...

 시험관 시술을 포기하려 했다. 아니...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 이상 소진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가 첫 번째는 아니지만 외관상 드러나는 이유는 그러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소진이 되었다. 기대하고 실망하는 과정을 반복하는걸... 더 이상 해 낼 자신이 없어졌다. 몇 퍼센트의 희망이 있다고 누군가가 확인해 줄 수 있다면 계속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병원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성공률에 아직 내가 들지 못하고 있는 건 확실하다. 병원은 분명 멋진 성과를 내고 있다는데 나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상실감이 또 나를 힘들게 한다. 그 현수막을 보는 게 힘들어서 병원엘 가는 것도 힘들었다. 나도 저 성공률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거기다 각종 병은 다 생긴 것 같다. 약으로 호르몬을 조절하다 보니 이것저것 문제도 많고 탈도 많은 몸이 되어 버렸다. 어쩔 땐 애가 생겨도 기를 수 있는 몸인 건가? 하는 겁이 나기도 했다. 난임 병원 의사 선생님은 시술이 원인은 아닌 것 같다 하고, 병원에선 시술이 문제일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원인을 찾는 것도 무의미하다.

 한때는 매일 고민을 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뭘 안 하고 있을까? 고민하면 결론은... 우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바보같이 나 자신을 병들게 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물들이며 나를 눈치 보게 만들고 있었다.

 이젠 그냥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걸 하루하루 해 나갈 뿐이다. 일단은 건강한 몸을 회복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 운동도 이 시국에 뭘 할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그냥 걷기 시작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으면 고민할 겨를도 없다. 음악이 좀 더 신나고 내가 여유가 있을 땐 달리기도 한다. 늦은 저녁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스쳐가면 쓸데없는 고민도 할 정신이 없이 머리가 찌릿한 게 기분이 좋다. 운동을 따라나선 조카의 잠시도 쉬지 않는 수다도 좋다. 조카의 고맘때의 고민을 듣고 있노라면 내 걱정을 할 시간이 없다. (대신 귀에 피가 나는 기분이다. 말이 엄청 많아...) 종종 조카의 썸남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재미있고 신나기도 한다. 아!! 핸드폰 어플이 칭찬도 해준다. 잘 걸었다, 잘했다, 활동적으로 살았다 이런 칭찬을 듣고 있으면 열심히 산 것 같아서 기분이 나아진다.

 그리고 블로그에 글도 쓰고 있다. 매일같이 가던 카페나 식당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웃도 많이 생기고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포스팅을 작성하고, 답글에 답방까지 하다 보니 브런치에 글을 쓸 틈이 없었다고 할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더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다.

 또... 주변을 다시 돌아보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고, 종종 짬을내 만나기도 한다. 멀리 있어 차를 오래 타면 해가 될까 가지 못했던 친척집도 가봤다. 그리고 가장 소중하지만 늘 뒷전으로 미뤄둔 남편. 맛있는 저녁도 차려주려 노력하고, 가고 싶은 곳도 같이 가고... 있지도 않은 아이에게 아내를 뺏겨 힘들었을 남편에게 다시 집중하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려 한다.

 무엇보다 나를 다시 보듬어 주고 있다.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가고 싶은 곳 리스트도 만들어 본다. 시술에 해롭다고 미뤘던 파마도 해보고, 등산도 가고, 평소 취미 삼아하던 가구 재배치도 번적 번쩍 들어 옮겨가며 해본다. 있지도 않은 아이가 혹시나 해로울까 못하던 일을 시원한 게 해 본다.

 그러면서도 혹시 몰라 임신테스트기는 서랍 한가득, 술은 끊고, 커피는 줄였다. 뭐... 술이나 커피는 건강에도 도움은 될 테니...

 이게 지금의 나다. 지금 없는 아이를 위해 전전긍긍하며 사는 내 모습이 아닌 언젠가 올 아이를 위해 지금의 내 삶을 잘 사는 것.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지 더 이상은 몰라서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지금을 열심히 살다 보면 결론이 오는 날도 있겠지. 네가 오던지... 아님 내가 포기하던지... 지금은 그 어느 선택도 할 수 없다. 그저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천천히 해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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