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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미 May 31. 2021

널 만나려고

혼자 있고 싶습니다.

시험관을 하면서 우울한 날 중에 하루는 생리하는 날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러고 할 수 있는 만큼 기대한다. 많이 먹어서 조금 속만 안 좋아도 혹시? 하고 기대한다. 여성 호르몬 주사 때문에 가슴통증이 생기는데 이것도 임신인가 기대한다. 암튼 이런저런 기대를 하다 보면 오라는 소식은 안 오고 생리가 찾아온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마트를 간다.

 마트에서 생리대나 칫솔, 면도기, 샴푸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홍보와 행사를 진행하시는 직원분들이 있다. 나는 그 코너에 진입하는 게 너무 힘들다. 내가 천천히 보고 싶고, 충분히 구경하고 싶은데 소임을 다하시고 최선을 다하시는 이분들께서는 날 혼자 두지 않으신다. 내가 사고 싶은 물건과 이분이 팔고자 하는 물건이 같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다르면 그때부턴 많이 힘들어진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시며 "찾는 거 있으세요?", "저희 제품 행사 중인데... 덤으로 더 드려요." 심지어는 "그것보다 우리 제품이 좋은데..." 하며 남의 회사 물건을 깎아 내리기까지 하신다. 그럼 조용히 "예... 혼자 좀 볼게요. 그 제품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하는데 그럼 그냥 가시는 분이 반... 정말 소임을 다하시는 분이 반이다. 소임을 다하시는 분은 프로페셔널하시지만 나에겐 너무 힘들다. 

 나만의 미신 같은게 있다. 어쩌면 징크스라고 할까? 생리대가 집에 많이 남아 있으면 그걸 다 쓸 때까지 임신이 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내가 유산을 경험할 때마다 싸다고, 많이 준다고 추천받아 산 생리대가 집에 한가득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걸 결국 내가 다 사용하게 되었다. 몇 번의 경험 후엔 항상 이번이 마지막 생리이다 생각하며 간당간당하게 작은 양의 생리대만 구입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나와,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직원분이 만나면 정말 최악이다. 어느 날 결국 그런 날이 오고 말았다. 나는 또다시 찾아온 실패로 최악의 기분을 가진 날이었고 이분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싶은 날이었다. 그럴 줄 알고 동네 마트에 갔는데 내가 필요한 종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트로 향했다. 위치가 바뀐 건지 내가 찾는 물건이 주로 있던 자리에 없어 고개를 두어 번 두리번거리는 사이 그분이 오셨다. "찾는 거 있으세요?" "네... 있긴 한데 그 회사 제품이 아니에요." 할 수 있는 한 정중히 거절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근데 요즘 이게 제일 잘 나가요." "네... 그렇지만 전 제가 쓰던 거 사고 싶어서요." 한 번 더 꾹 누르고 참았다. "아니 좋은 거 나왔는데 왜 안 좋은걸 쓰시려고 해요. 요걸로 바꿔 보세요." "아니요, 제가 사고 싶은 거 살게요. 혼자 천천히 좀 볼게요."이미 참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최선을 다했다.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열심히 일하시는 분께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난 임신이 안됐을 뿐이지 정신을 잃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분은 프로가 되고 싶으셨다. "아니, 내가 샘플도 줄 거고, 무엇보다 제품이 좋은데...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고 그래요. 내 몸에 영향을 주는 건데." 이해한다. 나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최선을 다해 어필하는 편이고 주변에 추천해주고 사주고 오지랖도 넓은 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는 정신상태였고 나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렇지만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나는 그냥 혼자 있고 싶었는데...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사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사람에게 함부로 하면 내 자식이 돌려받는다고 했던 말이 하필 그 순간에 떠올랐다. 있지도 않은 자식 때문에... 혹시 이 일 때문에 아이가 생기지 않을까 꾹 참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그냥... 제가 사정이 있어서 혼자 좀 볼게요. 많이 필요도 없고 제가 사고 싶은 게 있어서요."하고 고개 숙인 채 울었다. 그 프로페셔널하시던 직원분은 "뭘 또 울고 그래... 내가 뭐라고 했다고..." 하면서 자리를 떠나셨다. 겨우 진정하고 내가 사용하던 제품을 들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그때 그 생리대를 다 사용하고도 몇 번을 더 구매했다. 그 이후로는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그날 바보같이 울었던 내 모습이 싫어서... 그리고 이번엔 그 프로페셔널한 분을 잘 참을 자신이 없어서... 제발... 혼자 있고 싶습니다. 좀 내버려 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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