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쓴 일기
1.8
작년에 이어 생일 전날 생일 축하를 치렀다. 급하게 생일 초를 불어야 했고 준비된 소원이 없었다. 아무 소원이나 떠오르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사람들 모두 숙면하게 해 주세요.'
과거에 몇 번 교회를 간 적이 있다. 기도를 해야 할 때면 기도내용에 대해 고심했다. 이루어지면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는 기도를 하기 위해서. 이를 테면 시험에 붙게 해 주세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같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선의는 누군가의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보태기보다 고스란히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친절하려 애썼다. 이런 개인적 성향이 집회에 나가고 사회개혁 방안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과 모순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사회개혁을 고민하는 일도 누군가의 온전함을 지키려는 일임을 알았다.
1.14
근로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뒤처지거나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이 되었다 (나는 주식이나 재테크 공부(?)를 '일' 또는 '노력'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일을 해서 집을 사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고 집을 사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가치창출과 관계없이 벌린 돈도 시장에 내놓으면 그만큼의 물건과 서비스로 바꿔준다. 돈과 달리 그 물건들과 서비스는 누군가의 노동 없이 생산될 수 없다. 편리함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재테크를 잘하면 소비자의 위치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저녁시간에 밥을 차리기 싫으면 배달을 시켜 먹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같은 시간에 남의 저녁을 요리를 하고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은 그 시간에 돈을 벌었으니 괜찮은 걸까. 그렇게 번 돈으로 다른 편리함을 사면 되는 걸까. 돈은 억울함을 (불공정하게) 나눠갖는 방식으로 공평한 척한다.
시세차익으로 돈을 벌고자 사람들이 특별히 부도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은 자산이지만 복지가 없는 나라에서는 복지를 겸하기도 하니까. 그들이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의아했다. 연구나 시위현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은 상품이 아니라 식구들과 그 식구들의 식구들이 살 보금자리고, 재개발로 생겨나는 소모품 같은 일자리 필요 없고, 세대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보장해 주는 일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자 자산으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집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들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지불해서 얻을 수밖에 없는 편리함의 굴레를 어떻게 빠져나갈지를 다른 방식으로 고민했다.
1.2
월요일은 만취한 상태에서 정원을 돌아다녔다. 겨울이라 대부분의 식물들이 시들어있었다. 취기를 빌려 오랜 시간 식물을 공들여 바라보며 감탄했다. 문득 한 번도 시든 식물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물이 꽃을 피우거나 열매가 맺힐 때 눈이 가는 것은 인간이 취할만한 것을 알아보는 본능일까? 그날 마주한 식물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았다.
1.4
수요일에 공연을 봤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여행을 온 친구와 함께였다. 오후 내내 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평일 저녁이니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전략적 행보였다. 표를 예매하면 35달러였지만 현장구매를 하면 25달러였다. 현장구매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 영업을 하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주점이었고 닫혀있었다. 10분간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니 긴 줄이 생겼다. 우리 앞의 많은 사람들은 공연표를 미리 예매한 사람들이었다.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공연시작시간에 들어선 바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그때부터 나는 10달러를 내지 않아서 공연 경험을 망칠까 초조했다.
현장구매를 한 사람들과 공연장에 들어서자 미리 예매를 한 사람들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직원은 앞에 자리가 나면 앉혀줄 테니 서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와 친구 앞에 두 팀정도의 현장구매 일행이 있었는데 직원은 그들을 앞자리에 앉히더니 우리에게 앞쪽에 남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탭댄스 공연이었는데 우리가 앉은자리에서는 연주자와 공연자의 얼굴 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마저도 화장실을 가거나 일어서는 사람들 때문에 드문드문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고서도 꽤 오랫동안 집중을 못했다. 분했다. 중간중간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까지 서서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이들과 술을 서빙하는 직원, 그리고 10달러를 아끼겠다고 안일했던 스스로가.
공연을 보여주겠다고 끌고 와놓고 형편없는 자리에 앉힌 것이 미안한 마음에 옆에 앉은 친구를 쳐다봤는데 친구는 공연에 완전히 몰입한 표정이었다. 그제야 나도 공연을 온전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탭댄스인데 발이 안 보이고 공연자의 표정만 보이니 오히려 신비로웠다. 아까부터 중간중간 일어나서 휴대폰 촬영을 하던 사람들에 의해 시야가 잠시 가려졌다. 대신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모녀인 것 같았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와 그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자꾸만 찍고 싶다는 것은 이 시간이 나중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들의 환한 얼굴은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아마도 예매로 티켓을 구매했을 누군가가 내가 갈망하던 무대 바로 앞 좌석에서 일어나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나갔다. 저기 자리 비었다, 가서 찍을래? 친구는 괜찮아, 하고 웃었다.
1.10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친구는 마른 게 콤플렉스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너는 대화를 할 때 네가 너무 많은 발언권을 차지하지 않으려고 조심해. 네 몸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것처럼. 나는 그 일관성이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