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여주는 윤슬은, 아마도 그것의 웃음소리일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알게 된 그 형은 내 성씨가 '윤'씨라서 부럽다고 했다. 내가 "왜?"라고 되물으니 그는 제주바다의 윤슬에 반해 제주의 삶을 선택했다고 한다. 제주를 선택한 이유와 내 성씨가 '윤'인 것이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이름을 외자 '슬'로 지을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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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제주의 바다는 실제로 윤슬이 굉장히 아름답게 형성되는 지역인데,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낮부터 밤까지 바다멍을 때려도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에 홀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윤슬]은 바다에 옅은 바람이 불어와 잔물결이 일렁이면, 햇빛이나 달빛이 비치어 바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혹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넋을 놓은 적이 있었다. 특히나 제주도에 도착한 후에는 바다 앞 카페의 창을 통해서, 모래사장에 걸터앉아서 해안가로 밀려오는 파랑을 흔히 지켜보곤 했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로운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철썩- 파도가 부딛혀 부서지는 소리. 모래사장으로 떠밀려온 파도가 되돌아가며 모래알을 긁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새의 울음과 뱃고동 소리. 더 나아가 모래사장에 앉아있는 나를 배경으로 삼는 타인의 행복한 웃음소리와 말소리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시끄럽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소리들은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화이트노이즈가 되어 바다가 들려주는 오페라를 더욱 선명하게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평온함. 5년 전 첫 회사를 퇴사하는 날, 나는 사무실을 일찍 나와 회사 근처 초등학교 옆 공원에 가 앉아 가만히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그네 타는 아이를 나른하게 바라보던 일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끼익- 긁히는 그네 소리는 햇빛에 묻혀 불편하지 않았고, 꺄르륵- 즐거워하는 아이의 웃음소리에 자연스럽게 나는 눈을 감았다. 어느때보다 따스했고, 평온했다.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바다에 옅은 바람이 불어온다. 그 느낌이 간지러운지 바다는 몸을 흔드는 것처럼 잔물결을 일으킨다. 그 부슬부슬 떠는 몸짓에 햇빛과 달빛이 닿으면 우리의 눈으로 비쳐져 윤슬로 관찰된다. 마치 간지럽히면 꺄르르 웃음을 쏟아내는 아이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바다가 보여주는 윤슬은, 어쩌면 그것의 웃음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숲 속에서 부는 바람에 나뭇잎과 그 가지가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그 소리와 그늘에 안정감을 얻는 것처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현상에 우리가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마치 그 현상들이 아이들과 같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를 제외하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놓아주게 되는 어떤 '순수함'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자연속에서 '힐링'을 찾는 우리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웃어주기를 바라고 있나보다. 바다가 보여주는 윤슬로,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로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