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ututi Mar 04. 2021

농사꾼에겐 반가운 봄소식

밸런타인 데이 선물로 받은 방석 의자를 써볼 날이 가까워진다

봄이 왔다.

비가 내려 땅을 녹이더니 외투 없이 집 밖을 나가도 괜찮을 만큼 공기가 따뜻해졌다.

남부엔 봄이 빨리 찾아온다. 텍사스가 한동안 꽁꽁 얼어붙고 동부엔 눈 폭풍이 오는 동안에도 테네시 낙스빌은 고요하게 지나갔다. 큰 태풍도, 폭설도, 허리케인도 곧 잘 비켜가는 낙스빌은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나무로 지어진 미국집은 이런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엔 오히려 밖이 더 따뜻하다. 히터 바람보단 자연바람을 좋아하는 남편은 봄맞이 기념으로 창문을 죄다 열어젖히고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 사람들 중엔 일 년 내내 창문을 한 번도 열지 않는 집들도 많다.  바깥 날씨와는 상관없이 항상 히터나 에어컨이 돌아가면서 집안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공기를 순환시키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래서 한겨울에도 옷을 가볍게 입고 위에 걸치는 외투만 두껍게 입는다. 겨울 내내 켜 오던 히터를 5월이 되면 에어컨으로 바꾸고 다시 9월이 되면 히터로 바꾸면서 일 년 내내 에너지를 사용하여 집안 온도를 유지하는 게 일반적인 미국 가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며 일 년의 반 이상 창문을 열고 지낸다. 그러면 여름 새벽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아침잠을 깨곤 한다.


농사꾼에게 봄이 왔다는 건 이제 겨울 휴가가 끝났음을 뜻한다.

밭을 갈고, 씨를 심고, 모종을 키우고,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며 날씨에 맞춰 움직여 줘야 한다.

농사도 주식도 타이밍이다.

때론 진득하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만 때를 놓쳐서도 안된다.


겨우내 주방에서 나온 야채 과일 껍질들과 낙엽을 쌓아 둔 퇴비 더미를 재껴보니 아래쪽에 고운 흙으로 변한 퇴비가 나온다. 밭을 만들 때 한삽씩 넣어 주면 다시 싱싱한 채소로 우리 밥상에 올라올 것을 생각하니 신이 난다.  과학 활동 겸 6학년 큰 딸아이에게 토양 테스트를 해 보게 했다. 설명서에 쓰인 데로 밭에 4군데를 라 4인치 깊이로 땅을 파서 테스트 캡슐에  흙을 담아주고 시약과 물을 넣고 흔들어 색이 변하는 것을 기다린다. 토양 테스트를 하면 어떤 비료를 얼마큼 더 넣어주면 되는지 알 수 있다. 작년 가을걷이를 끝내고 담을 한 칸 더 쌓아서 밭을 두배로 늘렸다. 한 번도 농사짓지 않은 산의 진흙이 많아 올해는 토양 테스트가 필수다.



 

Home Depot에서 닭장 용 팬스를 사서 퇴비 틀을 만들었다. 여자 혼자 다루기에 가벼운 소재이기도 하고 바람도 잘 통해 쉽게 만들 수 있다.

퇴비로 아직 변하지 않은 윗부분은 옆칸으로 옮겨놓고 가운데 속에 고운 퇴비만 골라 밑거름을 준다. 게으른 농부인 나는 자주 퇴비를 뒤집기 보단 퇴비 망이 하나가 다 차면 옆에 퇴비 망을 하나 채우고 하는 식으로 시간이 일을 해 주길 기다린다. 이제 봄이 되었으니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미생물들은 더 빨리 분해를 할 것이다.


닭장용 패스로 만든 퇴비 틀은 가벼워 여자인 내가 혼자서 장소를 옮겨 퇴비를 모으기에 용이하다. 호박이나 토마토처럼 밑거름이 많이 필요한 작물의 경우 아예 지금부터 밭의 어디다 심을지 계획한 후에 심을 곳에 땅을 조금 파고 틀을 갔다 심어 놓고 부엌 쓰레기, 신문지, 낙엽, 잔디 깎은 풀 등을 차곡차곡 모으다가 흙으로 덮어주었다가 5, 6월에 바로 그 위에 씨를 심거나 모종을 옮겨심기만 하면 된다.

 

뒷마당 텃밭은 밭을 만들고, 집안에선 씨를 심는다.

몇 해 전 티브이에 나온 삼시세끼 밭을 참고로 하여 내가 먹고 싶고 가족이 잘 먹는 것을 고려하여 밭을 계획한다. 양파, 감자, 당근은 우리가 많이 먹는 음식이지만 시중에 아주 싸게 나오기 때문에 시중에서 비싼 종류로 골라 심는다. 또한 뿌리채소는 땅을 깊이 파줘야 되는 탓에 밭을 만드는 것도 수확하는 것도 너무 많은 수고가 들어 작년에 밭을 정리하면서 8년간 키웠던 더덕과 도라지를 다 정리 해 버렸다. 심고 싶은 작물의 종류기 많더라도 각 작물을 심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에 아직은 일주일에 조금씩만 밖에 나가 일을 해도 된다.

인터넷 어디에서 본 씨앗 발아시키는 방법을 잘 이용해 먹고 있다. 이렇게 지퍼락에 키친타월을 적셔놓고 씨앗을 발아시키면 발아된 씨앗만 포트로 옮겨 심어 모종을 키우면 돼서 씨앗과 모종용 흙을 절약할 수 있다. 또 각 씨앗마다 발아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니 모종이 차지하는 자리도 절약하게 된다.

텃밭 농사를 할 때 가장 많이 돈이 드는 것이 흙, 비료, 모종과 씨앗 값이다. 농기구야 처음 장만할 때 돈이 들지만 한번 장만하면 십 년도 넘게 쓸 수 있지만 소비 재품인 흙, 비료, 모종, 씨앗은 매년 투자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만약 죄다 모종을 사서 텃밭농사를 한다면 야채를 사 먹는 것이나 텃밭농사를 하는 것이나 그 가격에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씨앗을 사서 모종을 잘 키우는 것, 씨앗을 스스로 채종 하는 것, 스스로 퇴비를 만드는 것은 GDP엔 포함되진 않지만 텃밭농사를 취미활동이 아닌 경제활동으로 만들어준다. 올해엔 작년에 채집한 케일 씨앗을 발아시켜 다시 밭에 심을 것이다. 케일 씨앗은 배추나 양배추, 근대, 비트 등 배추, 무과와 교배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씨앗을 채종 하려면 한해에 한 가지 종류만 한 포기를 꽃이 피도록 나둬야 한다. 작년에 채종한 신선한 씨앗이라 그런지 하룻밤만에 싹이 텄다.

작년에 쓰던 포트를 꺼내 락스 물에 담가 씻었다. 모종이 자라기 위해선 깨끗한 포트와 모종용 흙이 필요하다. 농사를 짓던 둘째 해엔 살균을 해야 하는 걸 잘 몰라 예전에 쓰던 포트를 그냥 사용했다가 씨앗이 싹트자 얼마 안돼 모종이 다 곰팡이 균 때문에 죽어버렸다. 그다음 해엔 그럼 이 얇은 플라스틱 포트는 일회용인가 생각하고 아까운 포트를 다 버려버렸다. 농사를 짓고 나서 몇 해가 지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비눗물에 한번, 그리고 락스 물에 한번 씻어 균을 죽인 포트를 사용할 것! 마트에서 파는 16oz 버섯 통과 두부 통은 6개짜리 포트의 물밭 침으로 딱 알맞은 크기다. 물밭침까지 다 있는 포트는 없는 것에 비해 가격차이가 꽤 나는데 이렇게 재활용품을 사용하면 꽤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다.

아이들이 다 자란 썬룸은 이제 나를 위한 nursery가 되었다. 영어론 아이들을 키우는 곳도 모종을 키우는 곳도 둘 다 nursery이다. 농사를 제대로 하려면 계획하고, 투자하고, 관심을 가지고, 바깥 날씨에 신경을 쓰며 정성으로 보살펴야 한다.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자식농사라고 하셨나 보다.


작년부터 우리 가족은 샐러드로 일주일에 5일 이상 저녁밥상을 바꿨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해도 살이 자꾸 찌는 이유도 있고 아이들에게 1일 권장량인 다섯 주먹의 야채와 과일을 먹이려면 가장 좋은 방법이 하루 한 끼를 샐러드로 먹는 것이었다. 달걀, 생선, 두부, 아보카도 등 기본 샐러드 위에 올라갈 단백질만 바꿔가며 상을 차리면 되니 저녁 메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장 볼 때도 이번 주엔 뭐를 사야 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삶이 여유로워졌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운 야채로 밥상을 풍요롭게 채울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매거진의 이전글 21화: 소소한 행복 찾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