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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Jan 02. 2021

21화: 소소한 행복 찾기

행복도 꾸준히 연습하면 어느새 내 곁에 있다

설이라 만두를 빚었다.

미국에 사느라 1월 1일을 설로 쇠는 우리 가족은 매년 12월 31일은 만두 빚는 날이다. 강원도 출신 남편 덕분에 우린 제사를 지내진 않지만 남편이 어릴 적 했던 것처럼 1월 1일엔 늘 사골국물을 끓여 만두 떡국을 먹는다.


애들도 매년 하는 거라 이젠 제법 기술이 늘었다. 막내는 일부러 특이한 모양 만두를 만들며 창작의 혼을 불태우기까지 한다. 욕심에 이것저것 재료를 많이 다져 넣어선지 속은 많이 남았는데 만두피가 똑 떨어져 버렸다. 만두피 사러 가기가 귀찮아 금세 밀가루 반죽을 해서 만두피를 밀어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싹싹 긁어 담아 만두를 다 끝냈다. 장장 3시간에 걸쳐서.


거의 다 만들었을 때쯤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오면서 작년에 만두 만들다 힘들어 '내년부턴 만두 안 빚고 사 먹을 테야' 하고 선언했던 내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늦은 걸... 진작 재료 살 때 생각이 났어야 할 것을 장 보러 가선 신이 나서 재료를 쓸어 담던 내가 작년에 아팠던 그 근육이 뻐근하게 아파오기 시작해서야 그 기억이 났다. 덕분에 올해도 매운 만두와 고기만두가 각각 80개씩 냉동실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갓 빚은 만두를 따끈하게 김이 오른 찜통에 넣어 찐만두를 만들어 저녁을 때웠다. 젓가락을 들기 전 SNS에 먼저 사진부터 찍어 올린다. 저녁을 먹고 나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화상채팅으로 한국의 부모님께 새배를 올린다. 14시간의 시차 덕분에 새해를 좀 더 일찍 마주하는 행운을 누려본다


설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입는 한복 덕분에 집이 화사해지고 연말 분위기가 난다.


사람들은 SNS 속 사진들이 가면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현실 속 나를 꾸미고 치장하는...


멀리 있는 양가 부모님께 일일이 오늘은 이렇게 보냈어요. 오늘은 여길 갔어요. 오늘은 이걸 먹었어요. 하고 말하는 대신 난 내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린다. 그럼 엄마는 일일이 사진에 답글을 달아주고 라이크를 눌러 주며 나의 열혈 팬이 되어주신다. 그래서 며칠간 사진이 안 올라오면 궁금해하시며 전화가 온다. 요즘엔 뭐 하고 지내냐고...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그래서 더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서 오늘은 또 무슨 사진을 올릴까 고민을 하게 된다.


거짓된 행복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을 연습하는 곳이랄까? 소소하고 행복한 모습을 찍어 올리면서 그걸 보며 아이들과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연습해 본다. 서툴지만 거짓 없는 아이들의 그림 하나, 내가 만든 음식 하나 올리면서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행복을 느껴보고 연습해 본다. 작은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선물해 본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그런 작은 행복들을 잘 느끼며 커주고 있다. 어제와는 아주 작은 일상의 변화들에도 눈길을 주고 이름표를 붙여주고 우리끼리 하는 소소한 전통을 만들고 거창한 이벤트보다 자잘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나누면서 아이들 커 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2020년에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가족 음악회를 열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외엔 아무도 들어 줄 사람이 없어도 한달을 꼬박 열심히 연습했다.

하루에도 열댓 번씩 서로가 서로를 지나칠 때마다 눈만 마주쳐도 하는 허그와 키스. 그 행복과 사랑의 힘으로 2020년 한 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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