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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라 Dec 05. 2022

미인의 조건

님아, 그 인중을 밀지 마오

“엄마 여기 시커먼거는 안 없어지는거야?”     

화장대 거울 앞에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의 손가락은 그곳을 문지르고 있다

12살, 갓 태어나 응애 거리던 모습이 바로 어제같이 생생한데 어느새 내 어깨를 넘을만큼 키가 커버린 D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그곳(?)이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듯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아차, 싶어 화장대 거울 앞으로 다가가 거울에 비친 나의 그곳을 살펴보았다

한동안 신경 쓰지 않은 티를 내는 듯이 수줍게 하지만 존재감 확실한 나의 인중털들이 반갑다며 인사를 건내고 있었다     

“그래 슬프게도 그 털들은 계속자랄 거야”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조금만 관심 있게 본다면 무척이나 거슬리는 인중털은 나를  수십년간 귀찮게 만들더니 그걸로도 모자라 내 딸의 모공을 뚫고 자라나서 작고 여린마음에 고민 한덩이로 존재하게 되었다.        

   

체형이라던지 생김새가 날 쏙 빼닮은 D는 머리카락과 털의 타입까지도 나와 비슷했다

다리와 발가락의 털은 오히려 나보다 더 진하고 길었으며 심지어 양도 장난이 아니었다

혹시 독한약을 오래 먹어서 이런건가 싶어 인터넷을 뒤져보기도 했지만 애석하게도 약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어린나이에 다리, 발가락도 모자라 인중까지 거뭇하게 채워나가는 털을 보며 D의 다가올 사춘기가 걱정었는데, 그 많은 털들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인가 거울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마침내 오늘 입밖으로 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내가 처음 인중털을 눈썹칼로 깔끔하게 밀어버린건 스무살 때였다

전공이 메이크업, 특수분장이었기에 시연 모델도 수없이 했던 나였지만 학원을 다니며 입시준비를 하는 동안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신경쓰지 않았다. 조명이 달린 거울앞에서 몇시간동안이나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화장을 하고 상처를 만들어 내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던 인중털은 어느날 지나가듯 말하는 동기의 한마디로 인해 내 눈에 제대로 꽂히고 말았다.


평소에 신경쓰지 않던 작은 소음도 한번 귀가 트이기 시작하면 거슬리고 더욱더 크게 들려오는 것처럼, 한번 눈에 띈 인중털은 그날 이후부터 거울을 보면 빠지지 않고 상태를 확인하게 되었다. 남자들처럼 굵고 진한 수염은 아니지만 결코 솜털이라 할 수 없는, 존재감이 확실한 그것은 나의 완벽한 미모(?)에 비밀스러운 약점이 되었다 .




남모를 작은 약점이 여기저기 많은 나는 내 아이들이 예쁘지 않은 나의 약점들을 닮는다는게 너무나 싫었다. 내 몸에서 살다 나왔으니 그게 예쁜것이던, 그렇지 않은 것이던 나를 닮는게 당연한 것인데도 날 닮은 얼굴형이, 살집이 도톰해서 동그란 코끝이, 나를 보는것같아 속상하기도 했고 나는 왜 조금 더 예쁘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라는 자책과 원망을 던지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걸 좋아하고 자신감 넘쳐보이지만 사실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고 손가락질 받을까 전전긍긍하던 나는 말 그대로 자존감이라는 것이 바닥을 치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민가득한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D에게서 과거의 내가 보였다

어린 날의 나를 쏙 닮은 외모를 가진 내 아이에게, 남들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무너지기도 하는 어리석은 내 내면의 모습까지 닮아가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거 괜찮아, 엄마도 여기봐 여기에 수염있어. 원래 털많으면 미인이라고 했거든 엄마봐바 예쁘잖아! 너도 엄마 닮아서 털이 많은거야.
아이고 예쁜 내새끼 너는 코딱지도 이쁘다 야~”     


이제 막 인중털의 세계에 입문한 D를 위해 나역시 한동안 거뭇거뭇한 인중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네가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너도, 나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마음껏 쓰다듬고 안아주면서 성장하길 바란다.     



“아, 그리고 충분히 예쁜데 나중에 커서 화장할 때 잘 안 먹기도 하니까 조금 신경 쓰이면 그때는 엄마가 깨끗하게 해결 해줄게 같이 레이져로 지지러가자!”

 또한 도무지 포기할수 없는, 우리의 깨끗한 인중을 위하여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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