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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라 Dec 05. 2022

만 원짜리 서울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기


“엄마, 서울에 이순신 동상이 있다는데 그 밑에 뭐가 있는지 알아?”

“뭐가 있는데?”

“지하에 이순신 장군 박물관이 있대~”

  

어디에서 들은 건지 조잘 대며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애잔함이 마음을 할퀸다.

서울행 ktx를 탄 횟수가 몇 번인지 두 손과 발을 다 써도 헤아릴 수 없는데

티비 에서 보던 한강도 남산타워도,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는 광화문 광장도,

D와 나의 서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햇수로 6년째다.

1년에 두 번이었던 진료가 줄어서 1년에 한 번

소아신경과 진료를 보기 위해 우리는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서 서울로 향한다

뇌파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날 평소보다 잠을 재울 수도 없다

아이는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차에 실려,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다     

역에서 나오면 택시 정류장에서 마주 보이는 건물의 간판을 시작으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동안 보이는 가로수 나무들과 버스 옆에 붙어있는 광고판, 터널을 지나고 예쁜 드레스샵들을 지나치면 금방 병원이다     



서울역과 서울역에서 병원까지 택시비 만원도 채 안 되는 거리,

크고 복잡 하지만 이제는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병원 건물,

약국에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긴 횡단보도 까지가 바로 D와 나의 서울이다.



뱃속에서부터 특별했던 D는 대학병원에서 태어났고 돌이 되기도 전에 수술 대위에 올랐다.

수술은 잘됐고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이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유치원 졸업을 앞둔 일곱 살의 겨울에 D는 뇌전증 환아가 되어 버렸다     





어둡고 긴 터널에서 눈을 떴다

그 속에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저 누가 알아챌까 불안한 마음에 속도는 빨라졌고,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발걸음을 내딛는 이 길도, 내 삶도, 뒤돌아보고 둘러볼 여유와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기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고, 진료가 끝나면 약을 타고 도망치듯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오고 가는 6년 동안 고작 만 원짜리 서울 안에서 D는 자라고 있었다

좁고 어두운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 엄마 때문에 지폐 한 장만큼의 작은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를 위해 나는 터널에서 나오기로 다짐했다.      




예약되어있는 진료일은 다가오는 1월이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함께하는 1월,

병원과 택시 창문 밖의 풍경이 전부였던 D의 작은 서울에는

코끝이 시리도록 춥고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위풍당당하게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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