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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an 08. 2024

우주를 꿈꾸던 아이

그가 갑자기 자신을 도와 줄 여섯 살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공연이 한창 진행되던 도중이었다. 마술 공연이라는 것이 한치의 오차와 어긋남도 없어야 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이기에, 여섯 살 아이와 함께 하겠다는 그의 선언은 위태롭게 느껴졌고, 그만큼 공연장의 긴장감은 배가되었다. 그는 객석으로 내려와 이리저리 살피더니 정말로 여섯 살박이(만으로 여섯 살이라고 했으니 실제로는 이제 곧 학교에 입학할 아이쯤 될 테다) 아이를 무대 위로 데리고 올라가 공연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침착하게 묻는 말에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곧잘 따라했지만, 아이가 긴장으로 온몸이 얼어붙어 있음은 공연장 내의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대체 무엇을 보여 주려고 위험을 무릅쓴 채 '아이와 함께 하는' 마술을 기획한 것일까.


몇 가지 가벼운 마술들이 이어지고, 공연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그는 아이를 날게 해 주겠다고 했고, 아이는 로켓에 탑승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관객들은 각자 하나의 별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빛을 내었고, 그는 아이를 천으로 덮고 카운트를 시작했다. 3, 2, 1, 발사.


그리고 마침내, 아이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공연 내내 그가 보여 준 마술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트릭을 알 수 있었던 마술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간파당할 뻔하디 뻔한 마술이라는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천을 걷어냄과 동시에 아이는 하늘로 떠올랐고, 아이는 수많은 별빛 속의 주인공이 되어 비행하고 있었다.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어릴적 꿈이 떠올랐다. 나는 분명 우주를 꿈꾸는 아이였다. 언젠가는 나도 달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망원경으로 달을 보며 가슴 설레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꿈은 그냥 꿈일 뿐이었고, 나는 내가 우주를 꿈꿨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 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 했다. 잊고 있었던 꿈이, 내 어릴적 환상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여섯 살짜리 아이가 공연에 꼭 필요했는지, 또 그가 왜 스스로를 magician이 아닌 illusionist라고 굳이 칭하는지도. 그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 진정한 일루셔니스트였다.


이은결 더 일루션.

최근 본 공연 중 단연 최고였다.



* 이제 곧 2학년이 될 둘째가 공연 도중에 졸기 시작했다는 건 비밀이다. 짐작건대, 아직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둘째의 눈에는 그가 보여 준 환상적 현실이 그리 놀랍지 않았을 터이다.

* 그런데 illusion의 발음은 일루션이 아니라 일루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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