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 주가 지나갔다.
미국 학회에 가면서 3년차 전공의를 데려간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나는 3년차 전공의에게 해외 학회의 경험을 심어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데려간 것이지만, 사실 홀로 남게 될 같은 팀의 1년차에게는 가혹한 시련이었으리라. 아직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1년차가 혹여 3년차가 없는 마지막 주에 도망가지는 않을까 한 달 내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1년차가 연락이 안 된다는 전갈을 받았다. 왠지 내 탓이 큰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진짜 도망갈 줄 알았나 누가.
점입가경으로, 다른 1년차 한 명은 3월부터 유난히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이더니 아예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연락을 받았다. 하필 의국장이 해외학회로 자리를 비운 시기에 다들 왜 그러시나. 내가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내 귀국에 맞추어 다행히도 둘 다 돌아왔다.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다.
“우리 때는 도망갈 시간이 없어서 도망도 못 갔어.”
전공의가 도망갔다는 말을 들으면 꼭 이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뭐가 자랑이라고.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우리 때는 이랬느니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느니 이런 얘기하는 자체가 어쩔 수 없는 꼰대라는 반증이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외과 트레이닝은 여전히 만만하지 않다. 그 때는 그 시절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힘든 점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1년차 시절 잠깐의 소풍은 사춘기 일탈 정도로 눈감아 주는 것이 관행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반갑게 맞아준다. 얘 1년차 때 도망갔었다고 두고두고 놀리겠지만 그거야 나중 일이니까.
한 명씩 도망을 가는 건 외과의국의 연중 행사다. 올해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의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내가 서울대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도 매년 한 명씩은 도망을 갔었다. 그게 꼭 일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도망을 가게 되는 결정적 요인(trigger point)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비슷한 것 같다. 자존감의 저하다. 의대에 들어올 정도면 누구라도 수재 소리를 듣고 자랐을 텐데 전공의 1년차가 되어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면서 아 나는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구나를 깨닫게 되면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실, 도망갈까 고민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본인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한 고비만 넘으면 훨씬 더 재미있어지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기엔 당장의 현실이 너무 힘들어 도망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들을 잘 보듬어 주어야 하는 것이 교수진의 역할인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들 탓이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도망 한 번 못 가고 전공의 트레이닝이 끝났지만, 도망칠 용기라도 있었던 그대들은 더 큰 외과의사로 거듭날 것이다. 나는 그리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만 더 인내해 보자. 외과의사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재미있다.
(2019년 5월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