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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여름 Sep 15. 2024

[수능 D-60] 브로맨스

# 고명재 시인의 당선 소감을 읽다가 

엄마 회사 동료들은 청소년기의 아들 둘을 키우는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면서 종종 물어봐. 

중2의 남학생은 어떤가요? 사춘기의 남자 아이들은요?  

형제들끼리 말은 해요? 등등 


너희들의 평범한 일상을 말하거나, 

회사에서 가끔 네 동생 전화를 받고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 옆에서 함께 웃지. 

그렇게 무섭지는 않구나, 하고 ㅎㅎ 


형제들이 커서도 친하거나, 부모와도 대화를 잘 하거나 하는 모습이 흔한 일이 아닌 양 이야기를 해. 

그러면 엄마도 감사한 일이구나, 하지. 


그런데, 최근에 엄마가 이런저런 책과 기사들을 읽다가, 어떤 시인의 글에서 형제간에 애틋한 구절을 봤어. 

고명재라는 시인이 2020년 신춘문예 당선하고 당선 소감으로 쓴 글인데, 가족을 향한, 동생을 향한 마음이 너무 가슴 찡해서 보관해 두었어. 

이것도 아들 둘 키우는 엄마라서 주목한 것이지 싶다.^^ 

누가 당선 소감에, 남동생에게 쓴 한 구절에 이렇게 가슴 찡하냐, 이 말이다. 


너희들 키우면서, 

특히 팀 스포츠 하면서 어린 아이들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괜찮아 어깨를 토닥이는 모습들에 감동받았던 기억들이 떠올라.  

둘째가 지난번에 엄마한테 '형아랑 나는 말 안 해도 통하는 게 있어' 했는데, 그 말이 엄마는 그렇게 좋더라. 그리고 형을 '형아'라고 부르는 것도. 


아들 둘 키우면 늘 사람들이 안 됐다고 하는데 ^^

이런 소소한 기쁨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싶네.   




<2020 신춘문예 당선소감> - 고명재 시인 - 


어렸을 적,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은 문을 열어둔 채로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사라질 거면 저 많은 별과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꽃은 왜 피고 슈퍼 앞 고양이는 왜 목을 긁는지, 그 모든 것들이 알고 싶었습니다.


저를 오랫동안 키워주신 혜능 스님이 작년에 세상을 비우고 걸어가셨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랑이 떠나면 가슴 한가운데에 번개처럼 금이 생기는데, 그 금 위로 사랑의 강물이 흐르게 된다는 걸 요즘에 와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이야기가 남습니다. 몸이 사랑이 됩니다. 또한 그 이야기와 사랑조차 시간에 녹아 다 사라진대도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눈부신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사랑하는 김문주 선생님, 사랑의 선생님! 선생님이 우리의 스승이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처음 이곳에서 선생님이 강의했던 날, 칠판에 쓰신 시라는 글자가 제 이마를 뚫었어요. 창이 흔들렸죠. 속이 일렁거렸어요. 창밖은 봄이었는데, 선생님이 나긋나긋 시를 읽어주셨는데, 바로 그때 저는 저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이상한 확신에 휩싸였어요. 시를 이야기할 곳도, 배울 곳도 없던 이곳에서 저에게는 선생님 단 한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시였어요.


소중한 기회를 주신 문정희, 정호승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영남대의 스승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시를 쓰며 걸어온 현정이, 송이, 유신아, 우리 계속 같이 걷자. 같이 산책하자. 동우, 현수, 혁준, 택, 대희형, 승빈, 지영, 상회, 수정, 주은, 늘 고마워요. 끝으로 어머니, 아버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면서도, 밤이면 시를 읽어주신 두 사람. 저는 두 사람 덕분에 사랑의 바깥을 몰라요. 영재만 알지. 영재야, 이건 형이 처음 말하는 건데, 너는 형아가 쓴 시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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