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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여름 Sep 22. 2024

[수능 D-54] 오래, 끝까지 할 수 있는 일

마리아 조앙 피레스 80세 피아티스트의 내한 소식을 접하고 

너와 동생이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지. 

너희들을 태우고 어디 가는지 이야기해 주지 않는데,

한참 자고 일어나 보면 '예술의 전당'이나 그 비슷한 곳이었다는. 


전시회 가자고 얘기하면 안 갈까 봐 이야기를 안 해주고 출발하고, 

나름 전시회 가면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작은 기념품을 하나 살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그게 엄마의 전략이었어. 나도 너희도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었달까. 


그런데 그것도 너희들 초등학교 때나 가능한 일이었고, 

어느 순간 그것도 엄마의 욕심이었구나 싶어서 언젠가부터 혼자 다니고 있지. 

시간 날 때 휘리릭 혼자 미술 전시회나 음악회나 박물관이나 혼자 보는데 

그렇게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할 수가 없다. 

엄마가 여가를 풍요롭게 보내는 방법. 


왜 이렇게 서론이 길었냐, 하면.. 

너에게는 말을 안 했지만, 네가 올해 집에서 공부를 하면서 아무리 혼자라도 외출하는 것을 조금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시회 가는 횟수도 확 줄였거든. 

수능 100일 들어서서는 아예 전시회 관련 검색도 안 하고 있고. 


그런데, 오늘,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된 거야. 

예술의 전당 공연은 평일 공연이어서 놓쳤는데, 다음 주 서울 공연이 한번 더 남아 있다는데, 

뭐 보통 사람의 공연이었으면 마음을 바로 접었을 텐데, 

이 피아니스트는 포르투갈의 80세 피아니스트인데, 올 해가 마지막 내한 공연이라고 하니, 

엄마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여서 바로 예매를 마치고 말았지. 


피아노 연주를 현장에서 듣고 싶은 것보다, 

먼 시간 한국까지 공연을 와 준 80세의 거장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다는 마음. 


평생을 한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들 같아. 

예술 분야라 눈에 띄기도 하지만, 

우리 평범한 사람 중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 

이 시대의 유망한 직업 리스트, 사라질 직업 리스트, 이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너에 대해, 엄마의 육아 방식에 대해서는 어떤 아쉬움도 갖지 않으려 하는데, 

그래도 하나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더 깊이, 더 자주, 더 오래 못 해봤다는 것. 


앞으로 그런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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