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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미녀 Sep 02. 2022

복실이를 기억하며

그림책 <어느 개 이야기>

<어느 개 이야기>(가브리엘 뱅상, 열린책들)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개를 키운 적이 있다. 좁은 집이었지만, 함께 태어난 다른 형제들에 치여서 다리도 절고 불쌍하다고 이웃이 준 강아지였다. 엄마가 데리고 온 날 자세히 보니 강아지는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걸을 때보다는 뛸 때 표가 났다. 동생이랑 나는 하필 다리를 저는 강아지를 데려왔는지 의아해했지만, 엄마는 그것이 더 불쌍했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밟혔다나. 엄마는 키가 아주 작았는데, 키가 엄마를 훌쩍 넘길 즈음 엄마는 자신의 키를 더 의식했다. 나도 아주 어릴 때 커 보이던 엄마의 모습이 나보다 작아지는 시기가 오자,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신발도 작은 신발을 구해야 해서 적잖이 발품을 팔았던 터라 엄마는 더 눈에 들어왔을까.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어린 나는 이왕이면 함께 잘 놀 수 있는 튼튼한 강아지를 아쉬워했던 건 사실이다.


우리는 강아지 이름을 ‘복실’이라고 지었다. 산책이라는 개념도 모르던 터라 학교에 가면 복실이와 엄마가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긴 평소에 우리가 모두 나간 집에서 엄마는 뭘 하고 지낼까 그리워한 적도 없으니 말이다. 복실이는 엄마를 가장 좋아했고, 나를 그다음으로 좋아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밥을 주니 좋아한다고 쳐도 성질 더러운 언니는 왜 좋아하냐고 볼멘소리를 해대던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빠도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는 것이 낯설어 그런지 복실이를 처음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복실이의 매력은 온 가족이 복실이만 찾게 만들었다. 어느 날 열쇠를 잊어버려 창문으로 들어온 적이 있는데, 짖는 소리는 나는데, 복실이는 없었다. 아직 어린 강아지이지만, 개라면 도둑을 쫓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나였지만 짖는 소리만 나는 것에 걱정이 되었다. 복실이를 발견한 것은 창문에서 아주 먼 건넌방 문 뒤였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개의 정체성을 버린 복실이를 무척이나 놀렸던 기억이 난다. 복실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날로 커졌는데, 우리 가족들 모두 누구랄 거 없이 집에 오면 복실이를 먼저 찾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부리나케 온 날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엄마가 동네 나가실 때 복실이를 데려가실 일도 없는데. 복실이는 어디 갔나 한참을 찾았다. 돌아온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복실이를 원래 집에 다시 데려다주셨다고. 집이 좁기도 하고, 이제 복실이도 강아지가 아닌 개가 되었으니, 가족을 이뤄 살아야 한다고.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며칠 동안 엄마에게 화를 냈고 야속하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가장 좋아했던 엄마가 복실이를 직접 데려다줬으니,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헤아릴 여유는 없었다. 아직도 간혹 “복실아”하면 달려오던 복실이가 생각난다.


<어느 개 이야기>는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왔다. 이 책은 가브리엘 뱅상의 초기작인데 목탄의 거친 질감으로 크로키로 표현되고 있다. 나에게 다가온 것은 뒤돌아보는 개의 표정이다. 복실이는 근 1년여를 살아온 우리 집을 떠날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 개의 얼굴을 보면서 어린 시절 복실이를 떠올렸다. 첫 장면에서 차에서 내민 손과 공중에 뜬 개를 보고는 상황을 알기 어렵다. 강아지가 차에서 날아가서 사람이 손을 내미는 건가. 그런 의문은 다음 장면에서 의문이 풀린다. 차를 향해 달려가는 개의 모습이 정말 쌩하게 달려가는 듯 보인다. 다음 장면.... 다음 장면에서 차 안의 세 사람이 보인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지만 개와 차는 너무 멀다. 이때 개가 쫓아오는 속도보다 더 빨리 차가 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버려진다는 것을 알았을까? 차는 사라져 가지만 개의 헐떡임이 강하게 표현된다.


선으로만 그려진 생략된 배경 덕분에 개의 표정과 움직임 헐떡임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하다. 개는 냄새를 쫓아간다. 복실이도 우리는 기억할까 간혹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복실이가 자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내 서운해했지만, 어린 동생은 복실이를 많이 그리워했다. 나중에 엄마는 복실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그것이 더 슬펐던 기억이 난다. 함께 하지 못한 것도 서운했지만, 그 작은 복실이가 새끼를 낳고 하는 것이 정말 짠하게 다가왔다. 지금에서야 정말 복실이가 잘 살았을까 의심해보지만, 당시에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버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유달리 나를 따랐는데, 혹시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한 것을 아닐까 걱정한 적도 있다. 그건 아닌데

어쩌면 내가 개를 키우지 못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개를 워낙 이뻐하니 사람들이 권할 때도 있다. 하지만 키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동반하는지.... 내가 책임질 수 있을지 늘 의문이다.


책 속의 개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복실이의 커다랗고 슬픈 눈을 떠올리게 하는 개의 모습과 개의 움직임이..... 복실이와의 잊혔던 기억을 소환한다.


휴가철 유기견에 대한 기사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유기견뿐 아니라 유기묘도 많다. 처음 기르겠다는 다짐과 달리 한 생명을 기르는 것은 완전히 시간과 애정을 들리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생명을 사고 내 마음에 안 든다면 기꺼이 버린다. 나조차 복실이가 귀찮게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엄마에게 다 맡겼던 적이 있다. 엄마가 복실이를 다시 돌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서 이해를 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개 한 마리를 온전히 살피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 약하기도 했던 복실이라 엄마도 혹시 잘못될 까 걱정을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야속한 마음을 풀었다. <어느 개 이야기>는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문명이 가진 폭력성을 생각하게 한다. 도로에 시꺼먼 연기와 구급차, 경찰차의 모습은 때론 전쟁의 혼란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어느 개는 때론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다면 우리도 이 개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복실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제는 알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에 아직 복실이와의 시간은 행복으로 남아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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