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3, 중3 된 두 아이에게 지겹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꼭 마지막에 읽어주는 그림책이 있었다. 책을 잃어버리고 다시 사면서까지 읽어주기를 멈추지 않았다. 앤서니 브라운의 <우리 엄마> "존경하는 나의 어머니께, 그리고 내 아이들의 멋진 엄마, 나의 아내에게"라는 헌사도 적혀 있다. 첫 장은 또 어떤가....'우리 엄마는 참 멋져요"라고 시작하고 있다. 아이를 둔 그맘때의 엄마들이라면 정말 환장할 말이라고 여겨졌다. 부스스한 얼굴에 머리도 감기 어렵도, 밥시간을 거르기 일쑤고, 잠도 쪽잠을 자는 나날의 연속. 그럼에도 멋질 수 있는 엄마라니. 그때는 당연하다고 무심히 넘겼지만, 지금은 "음 아이가 이제 다 컸나? "라는 생각부터 할 것 같다.
당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던 때였다. 큰 아이가 4살 둘째가 겨우 돌이 지났을 때. 이 책을 매일 밤 이제 말귀도 알아듣고 제법 글자도 알아가는 큰 아이를 위해 울어주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두 아이 모두에게 잠자리 그림책으로 읽어주곤 했다. 특히 보통의 육아 그림책이 그런 거처럼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그리고......"'엄마도 나를 사랑합니다!"라는 마무리가 그때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니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이들 또한 나를 사랑해 마지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당연한 이야기들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지면 괴로워지는 것은 당사자이다. 종종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 반성의 시간을 몇 배로 길어지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스스로 몽상에 빠졌는지 모른다. 책 속의 멋진 엄마처럼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추억을 떠올리면서. 아이가 같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지겹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버럭 성질을 냈다. "봐봐, 여기 엄마도 멋지잖아. 엄마도 이랬단 말이야." 어린아이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나도 왕년에는 말이야 하면서.
멋진 엄마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엄마가 모든 것을 다해줄 수 있을 거 같이 '짠'하고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언제인가? 큰 아들의 경우는 아주 어릴 때였다는 추측을 해본다. 유치원에 왔던 산타할아버지도 돈을 주고 고용한 것이라고 어린 동생에게 차근히 설명해주던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서서히 준비물과 숙제를 잊어도 말을 하지 않고, 야단을 맞으면 맞는 대로 학교의 이야기를 차차 하지 않을 때였던 같다. 아이들 앞에서 정말 멋진 엄마가 되기 위해 바깥 음식을 먹이기 싫어 새벽바람에 도시락을 싸고, 아이의 많은 것들을 챙기고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정말 멋진 엄마 코스프레를 했다. 솔직히 멋진 엄마라는 정의조차 모른 채.
멋진 엄마 흉내는 오래가지 못했다. 멋진 엄마에 걸맞은 멋진 아들이 되지 못한다고 야단을 쳤다. 그러게. 이 책을 읽지 말걸 그랬나 보다. 굉장한 요리사이고, 재주꾼이고, 화가이고, 힘이 센 여자는 나의 로망이지 아이의 희망은 아녔는데도.
엄마는 마법의 정원사라는데, 베란다 화분은 시들어서 죽어가기 일쑤였고, 아이가 슬플 때 도리어 슬픔을 이야기하라고 다그쳤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 되거나, 될 수도 있었어요"이었다. 되거나 될 수도 있는 능력자인데. 너네들 때문에 이러고 산다는 한탄을 했다.
그림책 속의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글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나의 찬란한 과거를 줄줄이 이야기했다. 별다르 지도 않은 과거사였는데도,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하는.... 엄마가 되었지만,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 책을 늘 선택하고 읽어주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를 무시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멋진 엄마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나의 말들이 반사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랐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부족함이 많은 엄마임을 시인해야 한다. 솔직히 많은 것들을 잘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잘한다는 것. 사장은 꿈도 꿔본 적이 없으며, 요리도 너희들이 있어 일취월장했으며, 대부분의 일들에서 실패했고, 자그마한 부분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마음에 짐을 덜었다. 엄마는 학교 다닐 때 말이야 라는 뻥은 간혹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그대로 드러난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의 눈에는 드러난다.
(여러 육아 상담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고 있다. 육아는 힘들다.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온 마을이 필요한 일인데, 우리는 가정 안에서만 해결방안을 찾는다. 멋진 엄마를 만드는 것은 가정 밖일지도 모르는데. 사장이 되려면,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경력단절인 나를 쓸 회사와 자본이 필요하다. )
그래도 멋진 엄마 코스프레를 오래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때의 나를 반성한다. 오늘은 청년이 된 큰 아이를 보며 과거의 미성숙한 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