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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Dec 17. 2022

단군은 일천오백년간 나라를 다스리고

우리 건국 신화의 세계 첫 번째(下)

<단군 신화의 여백 채우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operaghost-eric/109



신단수 그늘 아래 서면

웅녀는 혼인하여 함께 할 이가 없어 날마다 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기를 원하고 빌었다. 환웅이 잠시 변하여 그와 혼인하였더니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한 것이다.

  드디어 단군왕검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본격적으로 인간의 행보를 보이는 웅녀의 이야기다. 사람이 되었음에 만족하지 않고 사람 구실을 하고자 애쓴다. 웅생(熊生)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모양. 그녀가 사람이 되고자 소원을 빌었던 곳은 단수 아래라 되어 있다. 여기가 어디냐고? 하늘과 맞닿아 환웅이 내려올 수 있었던 산꼭대기의 신령한 나무, 바로 신단수다.


  하늘로 오가는 통로가 되는 나무다. 의미를 확장하면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세계수(世界樹)로도 볼 수 있다. 최소한 영험한 나무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아닌가. 금줄을 둘러놓은 성황당(서낭당)이 떠오른다. 수목 숭배(樹木崇拜)다. 샤머니즘의 공간이기도 하고, 애니미즘의 공간이기도 한 신비의 나무는 웅녀의 소원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녀의 간곡함이 환웅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다. 환웅은 인간으로 잠시(;임시로 변함) 변하여 자신이 직접 웅녀와 혼인하는 것으로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준다. 지만 그게 전부다. '잠시 변했다' 함은 단군을 낳은 뒤엔 처자를 버리고 본래의 신성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는 뜻이다. 몽신화에서 유화를 꾀어 사통하고 홀연히 떠난 무책임한 남편 해모수와 행적이 유사하다. 멀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불한당 제우스도 있다. 신이라는 것들은 원래 다 이런가?



단군의 정체를 찾아서


단군은 요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지금의 서경)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기니 이름을 궁홀산(일명 방홀산)이라고도 하고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1500년 간 나라를 다스렸다. 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

  이야기책은 '단군이 조선을 세웠습니다'로 마무리지어도 문제는 없겠지만, 실제 신화는 이후 단군의 통치에 관한 서술을 계속 이어간다. 황당무계하지만 1908살이라는 단군의 나이도 나오고, 외부인에게 밀려나 꼴이 우스워진 말년도 나온다. 문제의 기자조선이다. 단군왕검이라는 인물 신화 속 가상의 존재 치부하그저 그런 이야기로 흘려보내기에 충분하지만, 그 안에서 역사적 실체를 찾아야 한다면 어느 대목에 집중하여야 할까?


  우리 역사의 첫 번째 국가 고조선은 청동기 문명과 함께 등장하였다. 국가는 평등한 원시 공동체 사회가 계급 사회로 이행한 결과물이었다. 지배와 피지배의 분화는 불행의 씨앗이었지만 동시에 역사의 발전이기도 했다. 국가라는 권력을 손에  정치적 지배자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권위에 대한 이의 제기를 원천 봉쇄하는 수단으로써의 이야기였다. '왜 나는 너희들 위에 군림해야만 하는가'에 관한 설명은 신비할수록 효력이 있었다.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야기 구조가 곧 신화였다. 단군의 이야기가 당대 사람들에게 소위 '먹히는' 이야기임이 판명되자, 그와 비슷한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 또한 비슷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로 꾸며 내었다. 그렇게 단군 신화의 요소들은 반복 및 재생산되며 이후 다른 건국신화의 원형이 될 수 있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상위의 신격(神格)이라면 아무래도 하늘과 땅일 것이다. 하늘과 땅은 양과 음, 불과 물, 남자와 여자 등으로 이어지는 상징체계의 근간이 되었다. 단군신화의 하늘과 땅은 하늘에서 온 환웅(天神)과 사람이 되는 데 성공한 영험한 곰(地神)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들이 결합한 결과 탄생한 존재가 곧 단군왕검이다. 하늘, 땅,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 곧 천(天)-지(地)-인(人)이라는 신화소의 기본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단군왕검의 정치적 카리스마의 원천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 아빠는 하늘이고, 엄마는 땅이야!" 무슨 소릴 해서라도 경쟁에서 이기고 보려는 유치원생의 대사가 아니다. 단군이 자신의 신성한 권위의 근거로 제시한 내용이다. 고구려의 주몽도 신라의 혁거세(정확히는 남해)도 동일한 구조의 신화소를 활용해 권력을 정당화하고 지배자로서의 권위를 천명했다. 고대인들에게 천지인의 구조가 얼마만큼 위력이 있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단군은 곧 '무당'이었다. 하늘의 뜻을 미리 알고 그것을 땅에 전달하는 뛰어난 인간으로서의 무당. 샤머니즘은 인간이 원시공동체 사회를 형성하였을 때부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보편적 원시 신앙의 주요한 형태였다. 무당을 뜻하는 글자(巫)를 따라 써 보자. 위의 가로획과 아래의 가로획 사이를 세로획으로 연결한다. 이어 세로획을 사이에 두고 사람 인(人) 자 둘을 쓴 형태다. 글자 자체가 무당의 존재에 관해 정의를 내린다. 무당이란 하늘(위 가로획)과 땅(아래 가로획)을 연결해주는(세로획) 사람(人)인 것이다.

  엑스터시 상태에 돌입한 무당은 신비한 능력자다. 신접한 황홀경 속에서 다가올 길흉화복을 미리 점치는 것이 샤먼의 능력이 역할이다. 천기누설이라고 하지 않던가. 천상계와 지상계를 넘나들며 앞날을 예측하여 경제적 풍요를 제공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무당은 초기 사회에서 제사장인 동시에 정치적 지배자가 되었다. 무왕(巫王, Shaman-king)의 탄생이다. 제정일치의 초기 계급사회를 이끄는 고조선의 지도자를 무당으로 해석한다면 그 권위의 출처를 확실히 설명해 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여전히 샤머니즘의 강력한 영향 속에 있다. 무속인을 찾아가 점을 치고 앞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경험담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무당의 이야기는 매스컴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유입된 고등 종교의 신앙 체계 속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간 샤머니즘적 행위와 믿음의 체계는 부인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무당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무당이 종교의식을 하려 한다. 굿을 하려 한다.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가? 시퍼런 칼날이 번쩍인다. 방울 소리가 쉴 새 없이 춤을 춘다. 펄럭이는 부채, 징이나 북과 같은 타악기, 오색 깃발과 작두도 무당들이 애용하는 소품이다. 이렇듯 샤먼이 의식을 위하여 엑스터시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단군이 무당이라면 그 또한 도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 도구에 관하여서는 앞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바로 하늘의 인장, 세 개의 천부인이다.

  천부인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웃나라의 경우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일본 왕실이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삼종신기(三種神器)'라는 것이 있다.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천황가에서 왕실의 징표이자 천황이 가진 권위의 종교적인 원천이라 주장하는 세 개의 보물이다. 중에게는 철저하게 감추어 베일에 싸인 삼신기의 정체는 청동검과 청동거울, 곡옥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무당의 도구와 비교할 때 크게 다를 바 없는 종류다. 다만 청동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청동 기물은 제의적 기구였다. 당대의 첨단 기술로, 극비에 부친 제조법으로 인해 오직 지배자들만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청동의 본래 빛깔은 산화된 푸른색이 아닌 황금빛이었다. 번쩍이는 청동검, 하늘의 태양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청동 거울, 귀신을 이끄는 청량한 소리의 청동 방울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의 신령한 나무라는 배경까지 더해진다면, 단군의 종교적 권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위치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단군 1908세를 살고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생활을 했던 원시 인류는 생존을 위해 '동물의 왕국'의 짐승 떼처럼 함께 움직였을 것이다. 농사짓는 법을 알게 되기까지는 무수한 세월이 흘렀고, 어느덧 정착을 시작한 이래 씨족 단위를 중심으로 평등한 원시 공동체 사회를 형성해 나갔으리라. 계속 흐르는 시간과 함께 원시적 분업화가 진전되며 사회의 규모는 조금씩 확대되을 것이고, 잉여 생산물에 대한 사적 소유의 차이로 인해 켜켜이 쌓여 가던 계층화의 움직임은 미약 계급 관 형성으로 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적 용어로 군장(君長) 또는 수장(首長)이라 불리는 정치적 지배자들이 이끄는 소국공동체(國共同體)가 등장하였을 것이고, 이 수많은 소국들이 편의를 위해, 또 경쟁을 통해 점차 통합 또는 병합되어 나가는 가운데 비로소 고대국가(古代國家)가 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정에 따른 이와 같은 역사적 발전 단계를 생각한다면 신화에 나타난 단군왕검의 시기는 바로 고대국가 출현의 이전 단계, 즉 정치적 지배자가 막 등장한 소국공동체의 단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출처:우리역사넷)


  지도가 하나 있다. 교과서에 꼭 하나씩은 실려 있는 지도다.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넓은 영역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탁자식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유물이 공통적으로 분포하는 지역이 곧 '고조선의 강역', 또는 '고조선의 문화 범위'라 배운 기억이 다들 있을 것이다. 여기서 오해가 발생하기 쉽다. 처음부터 조선이라는 강력하고도 단일한 나라가 있었고, 이를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단군 홀로 다스렸을 거라는 관점이다. 그래서인가, 기원전 2333년부터 1대 단군, 2대 단군 하는 식으로 통일 왕조의 계보를 주장하는 부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화에서 살펴본 단군조선이라면 이러한 생각은 상식적이지 않다. 왜? 역사의 발전 단계를 거스르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갑자기 올챙이가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 사서에 단군조선이 중국의 연나라와 경쟁할 만한 국가로 기록된 것은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상황이다.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다는 고구려는 느슨한 연맹의 단계를 거쳐 4세기 무렵에 이르러서야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의 체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기원전 2333년부터 무려 이천 년 가까이를 완성된 단계의 국가가 이어질 수 있다는 가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단군과 관련된 유적은 꽤나 넓은 지역에 걸쳐 나타난다. 묘향산에도, 황해도 구월산에도, 가깝게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도 있다. 1,500년을 왕 노릇 한 한 명의 개인(또는 하나의 왕조)이 신출귀몰하게 이곳저곳에 출현한 결과일까? 혹은 샤먼-킹인 복수의 '단군'이라는 존재를 매개로 하는 다수의 소국공동체들이 각각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형태로 천오백 년 여를 존속해왔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일까? 신화의 여백에 역사적 실체를 메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의외로 많은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는 퍽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 이유 없이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는데, 하물며 민족의 출발점이 된다는 신화가 그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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