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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ul 11. 2024

꽃 한 송이로 전한 것

오늘의 일기

 "꽃 한 송이만 주세요"라고 했던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지도 앱으로 근처 꽃집을 검색했다. 대부분 [영업 종료]. 저녁 8시를 앞둔 시간이었다. 웬만한 집은 일찌감치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영업 중'으로 표시된 한 가게는 곧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걸어가는 사이에 영업이 끝날 것이다. 검색 영역을 다르게 해 가며 지도를 샅샅이 훑어보니, 걸어서 7분 거리의 작은 꽃집을 어렵게 발견했다. 아내의 직장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위치로 종종 지나쳤던 곳이었다. 게다가 영업시간은 22시까지. 마침 잘 되었다. 왜 오가면서도 한 번도 보지를 못했는지 의아해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가는 새 비가 오면 어쩌나 싶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루를 달군 해가 사라진 하늘은 짙은 푸른색을 띠었고, 군데군데 뿌연 먹구름이 엮여 신비로운 빛깔이었다. 구름 사이 검푸른 하늘의 면적을 재니 당장 비가 쏟아질 기세는 아니었다.


  이미 문을 닫은 상점과 분식점, 식당을 지나쳤다. 한 무리의 손님이 와인잔을 기울이는 카페도 지났다. 꽃집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지도를 켜 보았다. 꽃집이 있어야 할 건물을 지도 위의 푸른 점이 조금 전 지나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슬쩍 뒷걸음질을 쳤다. 카페의 낮게 세워진 작은 간판을 발견했다. 이 지도에서 본 것과 같은 이름이다. 대여섯 사람이 왁자지껄 술잔을 부딪히던 카페가 바로 지도의 그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쑥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했다.

  카페와 꽃집을 겸하는 모양이었다. 카운터 뒤쪽의 작은 유리 상자 안에 꽃들이 요로콤 모여 있었다. "꽃다발을 해 드릴까요?" 둘 중 하나가 말을 걸었다. 흔한 편견이지만 남자 둘이 운영하는 꽃집은 처음이다. 빠르게 꽃을 훑어보았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그다지 싱싱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내는 한 송이의 꽃을 원했을 뿐이다. "작은 다발을 원하는데요, " 색이 거의 없다시피 한 자그마한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저 장미 몇 송이 넣어 주시고요."

  "삼만 원 정도에 해 드릴 수 있어요." 계속 한 명의 청년과만 대화가 이어졌다. 다른 한 명은 멀찍이 떨어져 카운터 앞으로 가서 섰다. "네, 좋아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게 말을 건 청년이 꽃이 진열된 유리 상자로 다가갔다. 두어 송이 장미를 뽑아 들고는 이어 보라색 개미취 몇 송이와 국화처럼 생긴 노란 꽃 몇 가닥을 함께 골랐다. 이파리가 많이 붙은 긴 줄기도 몇 줄 집었다. 조합을 보아하니 완성된 꽃다발은 막 들에서 꺾어 온 것 같은 느낌이 나겠는걸, 하고 생각했다. 청년의 손놀림은 투박했다. 투명 비닐을 크게 자르더니 꽃대 아래를 감싸도록 구겼다. 빠지직 비닐 소리가 났다. 물받침을 하려는 것 같은데, 꽃꽂이나 꽃다발 만들기에 관해 전혀 모르는 나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저게 꽃다발이 된다고?


  구겨진 투명 비닐은 도리어 넓게 퍼져 작은 꽃뭉치를 풍성하게 덮었다. 이어 하얀 비닐을 적당히 잘라 비닐 풍선을 주위를 휘감았다. 뭔가 잘 되지 않는지 감았다 풀었다를 몇 번 반복했다. 잘은 모르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내가 너무 쳐다보아서 더 당황하는 건가 싶어 관심도 없는 휴대전화로 눈길을 돌렸다. 무언가 생각이 있겠지, 무언가 그리는 그림이 있겠지.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 내가 해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꽃다발을 만들던 청년이 자리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꽃다발을 만들던 종업원이 가게 문 바깥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꽃다발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해괴한 무언가를 기울여 든 채로, 애써 비닐로 감싸 놓은 물받이의 물을 바닥에 뚝뚝 떨어트리면서. 처음에는 물을 너무 많이 담아서 조금 빼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참을 줄줄 쏟아내고도 계속 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보니, 아, 저건 어딘가 새는 것이 분명하다. 괜찮은 건가 적이 당황했지만 그마저 당황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못 본 척했다. 물을 다 비운 점원이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조금 전 자신이 앉아 있던 테이블 위에 꽃다발을 올리고 어렵게 감싼 장식용 비닐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잔뜩 구겨진 속비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마저도 과감히 풀러 내더니


  갑자기 성큼성큼 유리상자로 다가가 해바라기처럼 생긴 꽃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저건 뭐지, 갑자기 서비스인가?) 그다음 장면은 나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꽃 한 송이가 더 추가된 꽃뭉치에 조금 전 벗겨낸 투명 속비닐을 다시 구겨 감싸는 것이 아닌가. (물이 새서 벗긴 게 아니었어?)

  "커피라도 드릴까요?"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던 카운터의 다른 종업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꽃을 사면 커피를 서비스로 주는 가게인가, 아니면 커피를 내게 강매하는 것인가, 아니면 망친 꽃다발을 커피로 극복해 보겠다는 심산인가.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아 일단은 거절했다. "아,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꽃을 말던 청년은 지난 비닐 재활용을 포기하고 새 비닐을 잘라내고 있었다.


  "다 되었습니다." 그래도 꽃다발을 받아 들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그 뒤로도 순조롭지 않았다. 꽃다발을 펼쳐 놓은 테이블 위의 얼음컵이 쏟아지기도 했다. 세 조각의 얼음이 테이블 위를 미끄러졌다. 놀라 쓰러진 컵을 세운 것은 나였다. 꽃을 마는 데 집중한 청년은 물컵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얼음이라도 닦아내겠지 싶어 내게 커피를 권한 카운터의 점원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꽃다발은 우스운 모양새였다. 꽃은 싱싱하지 않았고, 전체적인 모양은 들풀을 막 꺾어온 산만한 형상이었다. 이런 못생긴 꽃다발은 처음이라며 아내는 막 웃었다. 어설픈 우리의 어제와 같다며 오늘의 꽃다발로 깔맞춤이 되었다는 진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지만 분명 좋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꽃다발을 둘러싼 겉비닐이 철옹성처럼 꽃을 둘러서 어느 방향에서도 꽃이 보이지 않아. 이런 꽃다발이 있다니." 의기양양 꽃다발을 들고 아내에게 전해줄 때까지 나는 전혀 보지 못했던 부분을 아내는 바로 짚어내었다. 꽃을 파묻듯 겉비닐이 360도 깊게 둘러 있는 것을 그제야 보았다. 가게의 정체가 궁금해 이후에 찾아보니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까지 진행하는 가게였다. 더 놀라운 것은 가게를 설명하는 다음의 문구였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남자 플로리스트, 여자 플로리스트가 편하게 상담 도와드립니다) 플라워 카페로 꽃 구매 시 무료 음료 제공합니다!

  

  집에 오자 아내는 엉성한 꽃다발을 풀어 꽃병에 꽃을 옮겨 담았다. 꽃병에 담기니 꽤 달라 보였다. 그렇게 2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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