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겨울 Sep 25. 2023

피곤은 나의 일

 피곤은 나의 일이다. 많이 읽었으나 쓰지는 않았다. 그 읽은 것마저 이렇다 할 문장의 여건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많이 읽는다 말하기 부끄러운 것뿐이다. 죽은 듯 살았으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생각의 끝이 무뎌지고 펜 끝이 뭉툭해지고, 그나마 달싹이는 입술로 만족하였으나 이제는 목 마저 쉬어버린 탓이다. 나는 무얼 하고 살았나. 소아병적이고 낯부끄러운 고백일 뿐인지. 나이 어린 이들로부터 부끄러운 일을 많이 당하는 요즘이다.

 피곤은 나의 일이다. 부족하지 않은 잠에도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을 곳을 찾아 부지런히 눈알을 굴리는 삶이다. 눈을 감으면 숱한 망상이 사라지고, 눈앞의 것이 전부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나이가 들은 모양이다. 어느 순간 그녀가 사랑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유 모를 반항심이 싹튼다.

 피곤은 나의 일이다. 이만큼 문장을 적고도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면. 어디 내놓지 못할 글들을 잠자코 적어 낸다. 토해 내는 분노들과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무엇도 옳은 접속사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나는 더욱 작아진다. 피곤은 나의 일이다. 어차피 나의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오거나,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게 될 일 없는 삶을 이미 살고 있다. 나는 돈이 없다. 나는 특출 나지 못하다. 인물들 사이로 내릴 역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기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바라고, 사라짐을 아쉬워하지 않음에 익숙해진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읽는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퇴근 이후의 시간에는 무언가를 해야 할 의지를 느끼지 못한다. 버리는 것이 아깝지 않아, 버려야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어느 쪽이 되었든 한 세상. 목소리를 높여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재미가 있다, 아직은. 선생질인지 꼰대질인지는 항상 재미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피곤은 나의 일이다.

 피곤은 언제나 나의 일이다. 바람이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그때는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다는데. 그런 건 그저 남의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 없는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