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운 날 그 추운 곳에 무슨 영문이었던가

홀로, 블라디보스토크 ①

by 한겨울

여행의 까닭


행기 티켓팅흘 전에 했으니까 꽤나 급작스런 결정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추운 곳에 나 혼자. 그러고 보니 써 2년 전의 일이 되었다. 2018년 1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계절이었다.


뒤늦은 여행기를 쓴다. 여행 기간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적었던 글이, 돌아오는 불 꺼진 비행기에서 여린 불빛을 밝히며 숨죽여 쓰던 문구가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기억의 서랍 속에 켜켜이 묵혀 두었다가, 추운 계절 탓인지, 생각난 김에 꺼내어 먼지를 털어 내어 보니 여전히 생생한 구석이 있어, 흐려 사라지기 전에 맺음을 지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대체,


그 추운 날 그 추운 나라에 무슨 영문이었던가.


홀로 여행을 결심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방학이었고, 생각보다 비행기 삯이 쌌고, 엇보다 혼자 좋았다.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교과서 한 귀퉁이에 기어코 빠지지 않는 지역이었고, 길지만 입에 잘 달라붙는 일곱 글자의 도시 이름은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가깝게 만나는 유럽' 위의 광고 문구 늘 인상 깊었고, 연예인들이 찍고 온 먹방 그럴싸했기에, <언제고 한 번은 가야지>, 하 오랜 결심도 있었다. (물론 실행에 대한 의지가 그다지 강했던 결심은 아니었다.) 역사 교사라는 직업은 모든 종류의 여행을 정당하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방어이 되기도 해서, 훌쩍 짧은 여행을 난다니 누구 하나 특별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좀 이상하게 여겼는데, 보통의 나라면 잘하지 않을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닭을 수 없는 여행이었으나 굳이 이유를 대자면 댈 것이 무척이나 많은 여정이었다. 2018년 1월 22일에서 24일까지, 2박 3일 간.





날씨와 옷차림


추웠다. 자에 약해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운데, 체감온도가 대략 영하 사십 도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위를 견디는 데 보통 사람 이상으로 강인하다 자처 왔었다. 경기 북부 지역의 군부대에서 복무하면서도 위 '깔깔이'라 부르는 방상내피를 한 번 입어 본 일이 없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러시아의 추위는 또 다를 수 있다는 염려에, 출발 직전 평소엔 생전 쓰지 않던 털모자와 장갑을 구매했었다. 맘먹고 산 털모자는 여행 기간 동안 거진 사용하지 않다. 머리카락이 눌리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취향 탓이었다. 찬 바람에 귀가 시리면 잠깐잠깐 야상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는 되었다.

머리카락이 눌리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털모자는 도착한 첫날 밤 이후에는 쓰지를 않았다


털장갑은 모자와 다르게 매우 유용했는데, 장갑을 착용한 상태서도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것을 렵게 찾은 것이었다. 두께가 있는 스웨터에, 실내에서 걸치고 을 재킷이나 카디건 등의 간단한 겉옷을 두르고, 그 위에 야상 점퍼를 입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목도리나 방한용 검은 마스크를 쓰기도 했다. 얼굴 전체를 포근하게 덮어 주는 방한용 마스크 선사하는 온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사람의 날숨에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마스크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방한용 마스크를 쓰고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입 주변을 따라 겉면에 하얗게 서리가 곤 했. 입김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따듯한 곳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 때면, 허연 알갱이가 들러붙은 마스크도 함께 녹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것이 어찌나 축축했는지 다시 쓰기 싫을 정도였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위에 하얗게 서리가 앉는다. 눈썹도 하얗게 되었다. 이렇게 보니까 무슨 극지방 탐험가 같다.


러시아의 추위를 버티다 보니 가끔은 한국 겨울의 따듯함 그리웠다. 우리나라 겨울이 아무리 춥다 해도 러시아만 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서울의 최저 기온은 러시아의 그것과 똑같은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얼어붙은 바다 위에 서서, 얼마나 추우면 사람이 바다 위를 걸어 다닐 만큼 바다가 꽁꽁 얼어붙을 수가 있나 무척이나 신기해했었는데, 한국에서 서해안의 바다가 얼어붙었다는 뉴스를 곧 들을 수 있었다. 2018년 한국의 겨울은 추위를 느끼기 위해 굳이 러시아에 갈 이유가 없던 계절이었다. <계속>


2018년 1월 26일의 최저기온이 무려 -17.8도. 그런데 이건 러시아가 아니라 서울의 지상 관측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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