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종이에 서명만 하면 되니까, 절차 자체는 간단했다. 헌데, 내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바로 앞사람이 난간 위에 휴대폰을 두고 간 것이었다. 차례가 되었고, 심사대에 서자 휴대폰이 보였다.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저기, 휴대폰...!" 하고 외쳤으나, 듣지 못한 여자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채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입국 심사대에 서서, 나는 밀입국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한 채 순식간에 엄청난 혼란에 휩싸였다. 이걸 내가 들고 가서 찾아줘야 하나? 뒷모습밖에 못 봤는데 누군 줄 알고? 이걸 내가 들고 갔다가 주인을 못 찾아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로밍은 되어 있나 이거? 공항 직원이 알아서 챙기게 내버려 둬야 하나? 내 여행 일정도 짧은데...?
사건이 벌어졌던 공항의 내부. 바로 이 곳에서 나는 이 여자들 저 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다녀야만 했다.
별 것 없었던 심사가 끝났고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내 손에 갤럭시 S7이 들려 있었다.
아직 수하물이 도착하지 않았다. 먼저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다행이었다. 수하물을 부치지 않아 먼저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저들 중 하나 일 것이다. 순간적으로 보았던 뒷모습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면세품 쇼핑 가방을 잔뜩 들고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먼저 심사를 통과하고 내려가 앉은 여자들은 모두 면세점 쇼핑 봉투를 한아름씩 들고 있었다. 이젠 방법이 없다. 무작정 물어보는 것 밖엔. 저기, 혹시 휴대폰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정확하게 저 대사를 세 팀에게 다가가 세 번 반복했다. 모두 아니라고 했다.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타국의 공항에서 모르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오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망했다. 내 손에 원망스러운 것이 들려 있었다. 아직도 수하물은 나오지 않았다. 저 쪽에 공항 직원인 것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한 분 서 있었다. 그래,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했다. 더 할 것이 없다. 가져다 맡기면 알아서 하겠지. 의사소통이 되려나,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 주위를 맴돌다가 직원분을 향해 나아가는데
여자 화장실에서 두 명의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역시 면세점 쇼핑 봉투가 들려 있다. 이젠 이 민망한 짓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나는 그들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이번 시도를 끝으로 나는 이 휴대폰에 대한 책임에서 손을 떼고, 저 직원 분에게 인계하겠다. 말도 잘 안 통할 텐데, 이상한 오해를 받으면 어쩌지, 생각하며 성큼 다가오는 내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 느껴진다. 저기, 혹시 휴대폰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어머!
그제야 휴대폰이 사라진 것을 인지한 그가 무의식적으로 겉 주머니를 만지는 제스처를 취한다. 드디어 해결되었다. 휴대폰을 건네주고 뒤를 돌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