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다. 홀로 밥을 먹고, 홀로 영화관에 가고, 홀로 카페에서 글을 쓰고, 홀로 쇼핑을 하고, 홀로 운동을 하고, 홀로 노래방에 가고, 홀로 산책을 가고 하는 것들. 어떤 것들은 도리어 편하고 좋았다. 약속을 잡고 시간을 맞추고 하는 일들은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었고, 하고 싶은 일을 굳이 원하지 않는 이에게까지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배려의 한 종류라고도 생각했었다.
여행도 비슷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면 아무래도, 끊임없이 그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성격상 코스를 짜고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가끔은 나의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누군가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그의 기쁨을 보아야만 나 역시 만족스러운 여정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철저히 혼자였다.
타국에서 온전히 홀로 있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많은 나라를 가 본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러시아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였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고, 여행 기간 동안 누구와 대화를 나눌 일은 더욱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외로웠다. 겨우 3일뿐이었는데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동안 사용했던 숙소의 모습. 숙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덧붙이도록 하겠다
낮은 짧았고, 해가 지면 돌아다니기 어려웠으므로 숙소에서 글을 썼다. 실시간으로 글을 올려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헛헛함을 달랬다. 둘째 날에는 커뮤니티나 어플 같은 걸 뒤져서 짧게라도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없는지 찾아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워낙 일정이 짧았기에 그마저도 어려운 일이어서, 여행의 끝까지 나는 혼자였다.
그럼에도 마주친 사람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스쳐간 이들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 간단한 기록으로 남긴다.
혁명 광장의 보랏빛 귀덮개
블라디보스토크의 혁명 광장
혁명 광장이었다. 중심부에 위치한 상징적인 공간인데, 중앙의 장중한 동상, 구석에 기념품 샵 하나 있는 것을 빼면 넓은 공터나 다름이 없었다. 주말에는 장이 열린다는데, 평일에는 그저 썰렁한 공간이었다.
(사회주의 경험을 가진 국가의 도시 설계를 보면 광장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가 도시의 설계를 해 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는 수흐바타르 광장이 있고, 국회의사당과 국립 박물관, 역사박물관과 같은 국가의 상징적인 건축물들이 광장을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의 바딘 광장은 호찌민 관저와 주석궁, 호찌민의 묘가 이어진 상징적인 공간으로 베트남 사회주의의 성전과도 같은 곳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광장 건축이 갖는 의미가 궁금하였으나 아직 적당한 해답을 찾지는 못하였다.)
울란바타르의 수흐바타르 광장(왼쪽)과 하노이의 바딘 광장(오른쪽) 모두 국가의 정신을 담고 있는 상징이다
아무것도 없는 혁명 광장은, 날이 추웠음에도 시내 중앙이라 그런지 관광객 몇이 덜덜 떨면서 열심히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나 역시 그저 사진을 몇 장 찍으러 간 것이기에, 셀카봉을 휘두르며 바람에 맞서 몇 장 건지고는,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는 찰나였다.
어여쁜 동양인 여자 하나가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당연히 내게 용무가 있을 리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리를 피하려는데, 어느새 여자는 내 눈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보라색 털이 반짝이는 귀덮개를 한 그녀가 내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그러고는 추운 광장 한 복판에 큰 헝겊 가방을 내려놓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한참 찾았다. 발음이 한국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일본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혼자 이 추운 곳으로 여행이라니 대단하다 싶었다.
그녀가 꺼내 든 것은 태블릿 피씨였다. 그녀는 말 대신 태블릿의 화면을 보여주며 손짓을 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사진이 찍히는 거라는 신호였다.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는데, 뭐 나나 그쪽이나.
혁명광장의 동상들.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물 자체다. 그림자는 나.
그러고는 쪼르르 동상 아래로 가서는 자리를 잡았다. 나는 각도를 바꿔 가며 그녀와 동상이 화면에 모두 담기도록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몇 걸음 다가가 태블릿 피씨를 돌려주니 땡큐, 하길래 유어 웰컴, 하고는 뒤돌아 빠르게 다음 목적지인 박물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추웠고, 추운 날씨에 휴대폰이 자꾸 방전되어 꺼지려 했기에, 어서 실내로 들어가야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정도는 한 번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마지막 일정으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야 들었다. 무어라도 한 두 마디 대화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정교회 사원에서의 비교적 긴 대화
포크롭키 정교회 사원. 이동 중에 멀리서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러시아 정교회 사원 셋을 보았다. 가장 크고 유명한 포크롭키 정교회 사원을 지날 때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던 데다 추위에 휴대폰이 방전되어 사진을 찍을 수 없었으므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개선문 옆의 영원의 불꽃 사원은 안에 들어가려 했더니 유리문 너머로 보이던 사제 분이 손바닥을 내밀며 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 보여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구글 지도에는 이름도 뜨지 않는, 해양공원 근처의 어느 사원만큼은 운이 좋게도 내부를 구경해 볼 수가 있었다.
수녀님을 만났던 이고르 체르니고프스키 성당. 당시에는 한글 이름이 지도에 뜨지 않았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이름이 나온다
대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조심스러워 근처 기념품 파는 곳의 주인아주머니께 물어보니, 흔쾌히 들어가도 된다고, 저쪽 문을 이용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영어로 물으면 러시아어로 답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러시아어로는 감사 인사밖에 아는 것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의 긴 답변이 대강 어떤 뜻인지 대번에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안에 들어가 예배실 앞을 기웃거리니, 발소리도 없이 정교회 수녀님 한 분이 슬쩍 내 뒤에서 나타나서는, 간단한 영어로 여기는 정교회 사원이며 이쪽에 와서 구경하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내부를) 사진 찍어도 되나요? 물으니 얼마든지 하라길래 신이 나서, 넓지도 않은 공간을 여기저기, 각도를 바꿔가며 찍고 찍은 데를 또 찍었다. 한참 사진 찍는 데 열중하였는데 문득 뒤에서 "중국인이에요?" 하는 물음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계속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던 수녀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뇨, 한국인에요. 남한이요. 대답했더니 수녀님이 고뇌에 찬 영어에 러시아어를 섞어 가며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러시아 사람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알아듣기 쉽지 않은 대화였음에도 신이 났다. 정교회 수녀님과의 대화라니, 쉽지 않은 기회였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서로 애를 쓰고 있음이 느껴졌던 대화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음, 솔직히 말하면 내가 바르게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나요? -토요일 오후 네시와 일요일 오전 아홉 시에 예배가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인가요? -아뇨. 사회주의 때문에 사람들은 종교를 잘 믿지 않아요. -아 그렇군요.
-북한에는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 하나가 있는데, 남한에는 정교회 사원이 없는 걸로 알아요. -정말요? 오히려 종교의 자유가 있는 건 남한인데? -북한에만 하나가 있어요. (지금 찾아보니 서울에 그리스 정교회 사원이 하나가 있다. 아마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 없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림들이 참 예쁘네요. -아이콘들이죠. -아, 그렇죠, 이콘... 저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고, 저건 모세고... 그렇죠? -(맨 가운데 중앙을 가리키며) 저건 트리니티고요. -오, 그러네요. (세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을 하나씩 가리키며) 성부, 성자, 성령? - 네, 맞아요. 많이 아네요? -저도 크리스천이거든요.
성당 내부의 모습. 여러 이콘과 장식들이 보인다
그간 수녀님도 꽤 적적하였던 것은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며, 몇 마디 더 힘겹게 이야길 나누었다. 사진도 다 찍었고(사원의 건물 내부는 꽤나 협소했다) 이젠 나가보아야 할 것 같아 땡큐, 했더니 수녀님이 유어 웰컴, 하고 받아 주었다. 무언가 고마움을 더 전하고 싶어 쓰빠시바를 덧붙이니 러시아어로 뭐라 답하였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기분 좋게 사원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아,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싶은데 괜찮냐고 물어보았으면 좋았을 뻔했구나. 수녀님 모습이 담긴 사진이라도 하나 남겨 놓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