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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Jul 02. 2024

왜 그 좋은 것을 그만둬요

이미 내 안에 심어져 있어요

 누구의 눈에는 좋아 보이는 것도 그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힘들어 보이는 일도 하는 사람의 만족에 따라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만 보는 것이다. 특히 내 결핍이 충족된 상태를 상대의 모습에서 볼 때는 더 그렇다.


" 왜 여기서 이런 거 하고 그래" 나를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그녀는 내 어깨를 찰싹 때리며 그릇을 정리한다. "그냥 하던 거 하지, 왜 이런 힘든 일을 하려고.." 그녀의 말속에는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지만 직업에 대한 그녀의 높낮이가 있음이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어때서, 말도 안 하고 혼자서 열심히 하면 좋은데.'  혼자의 중얼거림을 알지도 못한 채 그녀는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된 사회복지사와 마음이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던지라 그녀는 나의 과거 이력을 알고 있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본업을 마다하고 왜 조리를 하냐는 그녀의 말이 충분히 이해는 갔다. 하지만 '난 지금에 만족한데'라는 나의 마음이 부정당한 것 같아 잠시 새침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일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영어공부에 전공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한 것은 스튜어디스가 되어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였다. 그 날갯짓이 너무 강했는지 하늘을 날기보다는 내 입의 모터를 달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강사는 30대 학원 사업을 거쳐 지금까지도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 해오게 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다. 내 안의 아이와도 같은 마음은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과 스파크가 일어나 배꼽이 빠지게 웃고 땀을 흘리며 서로 소통하게 하는 정말 에너지 충만한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많은 힘을 더한 덕분에 집에서는 너무 조용한 엄마와 부인이었고 학원에만 가면 훨훨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런 일에 책임감이 부담감이 되고 삶이 되니 너무 버거웠다. 재미보다는 일이 되었고 그리고 노동이 되었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말들을 쏟아 내야 했고 감정노동까지도 나에게는 힘에 버거웠다. '대한민국의 제일의 강사야'라는 남편의 말이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지만 가르치는 일 빼고는 잘하는 일이 없구나라고 내 자존심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40대 나에게 찾아온 암선고는 그동안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무리하고 있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항암 치료 중에도 일을 했다. 그 해야 한다는 기억이 때로는 몸서리나게 나를 도망치고 싶게 만들고 있음을 난 안다. 그 일로 내가 성장하고 살아가는 큰 동력을 갖게 되었지만 내 안의 '해야 해'라는 목소리로 나의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렇게 한 길로 몇십 년을 보내다 어느덧 내 발 밑에 절벽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 보다 여러 일을 시작해 보았다. 모두 말을 하지 않는 일이었다. 조용히 혼자 하고 싶은 일이었다. 스스로 수행하는 일처럼 반복되고 몸을 쓰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정신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땀이 주는 신성함이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늘려 보았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다만 리가 어지럽도록 고민하는 것보다 결정권을 단호하게 하는 것에는 몸을 움직이는 일만큼 큰 것은 없다는 마음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지금의 나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영어선생님, 조리사, 코치, 그리고 작가까지 

어찌 보면 부산해 보이고 집중이 안 되는 이 일들이 모두 나의 삶의 가치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변화와 성장이 내 삶의 모터가 되고 함께 성장한다를 외치는 내가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경험한다. 또한 그곳에는 멀티의 욕심쟁이도 있음을 안다. 그러기에 스스로를 허용하기로 했다. 


그 좋은 것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그 좋은 것은 이미 내 안에 땀과 눈물이 되어 노력으로 심어져 있다. 다만 주저하지 않고 한걸음 나가 그곳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날씨에 따라 환경을 조성해 줄 뿐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의 열매만을 보고 실망할 것도 변덕스러운 날씨로 주저앉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때가 되면 여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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