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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Nov 26. 2024

요양원 치매 어르신들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그분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머리를 어쩜 그렇게 잘 다듬으세요?'

능숙한 그녀의 손질이 신기해서 연신 감탄하는 나에게 그녀는 '하다 보니 되던데요'하며 어르신들의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월요일 오후 한분씩 머리를 다듬는 요양원 실장님의 손길과 더불어 한 곳에 모인 어르신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오후의 졸림이 가득한 표정,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마냥 신기하게 둘러보는 이부터 그냥 담담해 보이는 모습도 보였다.


 요양원의 하루를 늘 조리실에서 보내다 난 가끔 휴게시간에 어르신들을 만나러 가곤 했었다. 사람이 그리워 손잡아 주면 손을 놓지 않는 분도 계셨다. 연신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고 별 반응 없이 쳐다보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을 돌보는 손길은 분주하고 바쁘게 돌아가도 그분들의 시계는 늘 천천히 돌아는 듯 보였다. 한 계절의 옷이 한 박스로 정해지고 삶의 공간이 침대 하나로, 행동의 반경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지는 그분들의 모습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 제한적이다. 똑같이 포장된 규격에서 개별성을 표현할 시기도 장소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에 어떤 생각을 하실까 궁금해졌다. 한때는 다들 왕성한 사회인이었고 한 가정의 가장들이었을 분들이 지금 이곳에서는 어떤 마음으로 계실까 가 마음이 쓰였다.


 요양원 실장의 역할은 상상을 넘어선다. 일상의 모든 주제를 꿰차고 있어 무엇을 먹고 입고 생활하는지부터 가족관계까지 모든 것을 다 살 살필 수 있는 레이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늘 주변을 살피고 있는 있는 레이다가 활성화되어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앞치마에 머리 미용도구를 꺼냈다. 오후 예배시간 전 후 한자리에 모인 분들의 머리손질을 하기 위해서였다. 거의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어르신들의 눌려진 머리를 깔끔히 다듬는 손길은 최적의 모습을 이미 머리에 그려놓은 듯했다.

지저분한 머리가 깔끔히 정리만 되어도 훨씬 멋져 보이는 모습에 다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연신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예쁘다 멋있다는 말이 싫지는 않은지 쳐다보는 눈길이 부드러워진다. 말의 표현은 줄지만 어르신들도 모든 감정을 느낀다. 자신을 대하는 표정과 손길에서 전해지는 마음을 느낀다.


 예배가 끝나갈 때쯤 찬송 반주를 하신 어르신이 전도를 하고 싶다면 준비한 커다란 성경책을 꺼내신다. 그 성경책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고 하신다. 그러며 연신 머리손질을 하는 실장님을 향해 시선을 맞춘다. '실장님이 이 성경책을 받아 줬으면 해요' 그분의 마음이 늘 따뜻한 마음으로 어르신을 대한 실장님의 마음과 만난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어느 위치에 있던 서로의 모습과 마음을 나눈 그 모습에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어떤 마음일까 어떤 생각을 하실까라는 나의 궁금증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 서로의 영혼까지도 생각하는 모습은 다시 어린아이처럼 돌아간 치매 어르신들의 모습만이 이 세상에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며 생기는 여러 상황을 늘 피할 수 만을 없을 것이다. 안쓰러워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늙어버린 육신이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은 다시 어려진다. 그리고 끝까지 놓지 않으면 그 영혼 또한 늘 맑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 주변 여기저기에는 찬바람이 불기 전 각양각색의 꽃들이 있었다. 그 꽃들은 한 계절 한 계절을 거칠 때마다 모습이 변한다. 봉오리에서 활짝 핀 꽃송이에서 이후 찬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으로 변하는 과정을 쭉 지켜보면 우리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음이 보인다. 단, 꽃잎이 떨어져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 아닌 봄을 위해 다시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게 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는 육신이 늙어 죽는 것에 대해 불쌍하다고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젊었을 때 많이 놀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육신만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꽃잎이 활짝 필 때만 꽃이라면 너무 안타깝다. 꽃봉오리도 꽃이요, 꽃송이도 꽃이요, 떨어진 꽃잎도 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이기에 늘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만 꽃이고 꽃나무이다.


 이곳에 계신 분들을 애처롭게 보았지만 그것은 나의 감정이요, 한 시기의 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처럼 자신만의 인생의 시기를 보내는 우리가 어찌 한 모습만으로 누군가를 평할 수 있을까

다만 서로의 모습에서 대하는 손길에 사랑이 전해진다면 앙상한 가지만 있는 겨울의 꽃나무가 가을의 꽃나무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고마워, 내년의 꽃을 위해 너에게 이 선물을 주고 싶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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