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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창고 아저씨 May 15. 2020

4-3 우리 삶을 바꾼 고양이, 토비

반.창.고 - 반갑다창문밖고양이


오랜 치료와 사랑으로

건강해진 토비는

자연스럽게

아내를 따르는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꽃님아 여기 오줌 싸면 안 돼. 닦기 힘들단 말이야."


아내가 방 귀퉁이를 가리키며 꽃님이에게 말하면

토비는 

꽃님이가 오줌 싸러 갈 시간 즈음부터

그곳에 식빵 자세를 하고 앉아

꽃님이가 다른 곳에 

볼 일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


늦여름 장마철 

아내가 방안에 

건조대를 펴고 옷가지를 널면


장난꾸러기 용감이가

선풍기 바람에 펄럭거리는 빨래 자락을

잡으려고 뛰어다니고


깜짝 놀란 아내의 안돼, 라는 외침에

눈이 동그래진 토비는 

그런 용감이를

말리려고 뛰어다녔다.


후에

더 많은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비는 

아내가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나머지 고양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뛰어다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용감이는 토비에게 

자리를 물려주었고

토비는 우리 집 모든 고양이들이 따르는

대장이 되었다.


토비는

용감이가 그랬듯

모든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난 후에 

밥을 먹었으며,

모든 고양이들이 잠자리를 잡은 후에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고양이들끼리 싸움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그 자리에 뛰어가

싸움을 말렸다.


그리고 싸운 녀석들 모두를 혼냈으며

그런 토비가 하는 행동에

반기를 드는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힘은 맥스보다 약했고,

덩치는 로이보다 작았으며,

유연성은 메이로보다 떨어졌지만...


모두가 토비를 대장으로 인정했다. 





토비와 함께 하면서

나에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

방에서 혼자 잠들었다가

그대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한참 지났을까

아내가 정신없이 흔들어 깨웠다. 


"여보 괜찮아. 이게 무슨 일이야?!"


겨우 눈을 뜨고 고개를 가누었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뻘건 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 베개였다.


자다가 나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는데

그대로 쓰러졌던 것.


아내가 깨워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많은 피를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토비가 평소와 다르게 계속 울길래 와봤더니...."


우연이었던 아니던

토비와 아내 덕분에 큰일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일을 겪은 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 순간이 영원할 거라

머뭇거리다가

토비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그때,

머릿속을 번쩍이며 지나갔던 

그 느낌이 또다시 찾아왔다. 


언제 어떻게 삶이 끝날지도 모르는 앞날.

할 수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어 졌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고양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 지금껏 저는 제가 살아야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식당을 조만간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고양이와 함께 할 생활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골목에서 구조한 고양이

입양 파양이 여러번 반복되다 갈곳이 없는 고양이

안좋은 환경에서 번식용으로 길러진 고양이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고 있던 고양이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에서

토비는 고양이들의 대장으로

열다섯 마리 가까운 고양이들을 살폈다.


여러 환경에서 모인 고양이들.

함께하는 공간이 평화로울 수 없었다.


고양이들끼리도 감정이 부딪히고

좋고 싫음이 있으며,

길에서 겪은 경험이라든지

버려졌던 집에서의 모진 기억이 뒤섞인

트라우마가 군데군데 튀어나올 땐

싸움이 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토비가 그 중간에서

서로를 말렸다.


싸움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창고는 고양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갔다.


마침내

모든 고양이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을 그때,  

토비가 쓰러졌다.


녀석은 함께하는 6년 동안 모든 기력을 다 쓴 것처럼

아파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눈물로 토비를 보내며 

아내는 이야기했다


토비는 행복했을까? 

우리가 토비와 함께 한 그 시간들이 

오히려 토비를 힘들게 한 건 아닐까?

 

나도 궁금했다.

토비는 살고 싶은 삶을 산 것일까?

아니면 살아야 하는 삶을 산 것일까?


먼 훗날 무지개다리 넘어에서 만난다면 

꼭 묻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지만,

녀석을 떠나보낸 지 5년이 지난 지금.

어느 쪽이었는지 묻기보단

토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다.


살아야 하는 삶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살고 싶은 삶도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네가 살았던 삶이 어떤 것이던

우리는 너와 함께 해서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그리고 많이 고마웠다고.


우리 맘속엔 언제나 네가 대장이라고...





요즘도 가끔씩 토비가 꿈에 나온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토비라는 말만 들어도

아내의 눈물이 툭 하고 터질 걸 알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녀석이 넓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용감이와 꽃님이와 함께

좋은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속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그 모습만으로도

목이 메어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토비 이야기 처음부터 보러가기...

https://brunch.co.kr/@banchang-go/7


반창고 이야기 처음부터 보러가기..

https://brunch.co.kr/@banchang-g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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