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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진 Yejin Lee Nov 14. 2024

미니멀라이프와 나의 정신 건강

최근 몇 달간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는 지금 집에 가구들과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예전 집에서 이사 올 때 가져온 안방의 대형 옷장을 팔고 작은 옷장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안 입는 옷들은 분류해서 기부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옷들 자주 입는 옷들로만 옷장을 정리했다. 집 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마구잡이로 넣어 놓은 잡동사니들도 다 꺼내서 지난 1년간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은 모두 버리거나 기부했다. 그리고 불필요한 수납장과 박스들은 없애서 꼭 필요한 물건들만 기능에 따라 서랍장에 분류하고 정리했다. 테라스에 잘 쓰지 않던 화분들은 모두 처분하고, 최소한의 물건만 남겼다. 이렇게 집을 비우고 정리하고 나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늘어나고 빈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사용하던 나의 화장대도 팔기로 결정했다. 사실 화장을 잘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기초화장 정도만 하는 나에게 화장대는 매일 10분도 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화장대를 없애고, 매일매일 사용하는 기본 스킨케어 제품과 꼭 필요한 화장품만 화장실 작은 선반에 정리해 두기로 했다. 안방에 큰 옷장과 화장대를 없애고 더 커진 공간에는 남편과 내가 각자 사용할 큰 책상을 나란히 두게 되었는데. 좀 더 쾌적한 사무공간이 만들어졌다. 이제 곧 둘째까지 태어나면 각자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불필요한 옷과 화장대로 차지했던 안방 공간이 비워지자, 좀 더 편안하고 쾌적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서는 아이의 물건들도 점점 많아졌는데, 특히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물건들도 많았다. 지하 창고에까지 가득 채운 아이 물건들. 장난감과 아이 옷 중에서도 꼭 필요하고 우리의 육아 가치에 부합한 것들만 남기기로 했다. 목재 혹은 몬테소리 장난감들 위주로 남기고, 아기가 금방 실증낼 만한 플라스틱 장난감들과 불필요한 육아 용품들은 모두 처분했다. 덕분에 아기를 키우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거실과 아기 방은 전혀 정신없지 않고, 늘 어느 정도의 정리정돈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치워야 할 물건의 개수를 줄이면, 치우는데 들이는 시간도 현저히 줄어드는 것 같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기 시작하기 이전에는, 많은 물건들에 치여 살면서 뭔가 하나를 찾으려면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하고, 정신없는 집을 보며 정리를 해야지 하면서 막상 엄두가 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상에 불평과 불만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비우고 내려놓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나의 생각들도 좀 더 정리가 되는 것 같았고 이미 주어진 것에 조금 더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들을 좀 더 잘 아끼고, 누리고, 사용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무조건 쌓아두고 쟁여두고 채워 넣고 살았던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왜 그랬었나 싶다. 있는지도 모르고 자리만 차지하던 물건들도 너무 많았고, 그렇게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식재료나 화장품 물건들도 너무 많았다. 미니멀라이프를 연습하면서, 비우면 비울수록 무엇이 본질인지 어떤 것이 정말 내 삶에 필요한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비워내야만, 무엇이 내게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인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와 공간이 생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나의 정신 건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변화였다. 이제 30대에 들어선 아기 엄마로서 나의 20대를 돌아보면, 정신없이 앞만 보면서 열심히 달려온 날들과 무언가 계속 채워 넣으려는 날들로 가득 차 있던 것 같다.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고 더 많이 성취하고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해 애쓴 시간들로 가득했다. 물론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루었고 또 경험할 수 있었지만. 다만, 정작 나 자신의 내면에 얼마만큼의 행복과 감사가 있었는지 돌아보면 잘 모르겠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순간순간 재미와 의미를 찾아 공부하고 일하는 건 즐겁고 행복했지만, 이면에 더 잘하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과 불만과 짜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게 되면서 나의 삶의 속도를 많이 늦출 수 있게 되었다. 결혼과 육아는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든게 분명하다. 빨리 달리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천천히 가더라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에 중요한 것은 나의 업적과 성취와 내가 아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나의 가족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지인 등 내 주변에 사람들과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내가 무엇을 갖고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하는지보다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게 아니던가.


뭔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듯한 사건들인 것 같지만,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나의 삶을 정돈하고 불필요한 소유를 정리하며 비워내고 나니,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진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진실된 관계들, 그리고 가족들과 보내는 일상의 시간들 속에 진짜 행복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한 번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나니 이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서 살기는 힘들 것 같다. 심플하게 사는 삶의 맛을 느끼게 되었고, 너무 좋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더 줄이고 더 심플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무언가를 새로 사거나 집에 들일 때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서, 내게 혹은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게 맞는지 그리고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 줄 물건인지 잘 생각하고 구입해야겠다. 마케팅이 난무한 요즘 시대에 충동구매와 끝없는 소유욕의 덫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국제보건분야 종사자로서, 나의 정신 건강부터 잘 지켜나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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