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남미 한 달 여행 함께 할
지구인 남성 약간 명을 모집합니다.
- 동선 : 브라질-아르헨티나-칠레-볼리비아-페루
- 일정 : 첨부 스케쥴대로 but 일부 협의 조정 가능
- 비용 : 여행사 패키지 비용의 절반 수준 예상
여러 지역 먼 길들을 혼자 많이 걸어봤으나 남미는 아무래도 겁이 좀 났다. 여행자들 사건 ·사고 많다고 주변의 우려와 만류도 심했다. 나름대로 심혈 기울여 짠 남미 한 달 여행 계획을 블로그에 올려 동반자를 공개 모집해 보았다. 음악 동호인들 모아 오프 모임을 갖고 싶을 때 내가 자주 써봤던 방식이다.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일주일 동안 서른여섯 분의 문의 또는 신청을 받아 On-Off 미팅을 가졌다. 그분들 중 내 취향과 스타일에 잘 맞을 듯한 4인을 최종 확정했다. 그리곤 출발 전까지 5개월 동안 여섯 번의 만남을 통해 팀워크를 다졌다. 물론 전략회의를 빙자한 저녁 모임들이었다
사이좋게 산티아고로 떠난 부부가 한 달간 순례 여행 마치고 돌아올 땐 각자 다른 비행기 타고 온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서로 잘 아는 부부 사이도 그럴진대 하물며 공개 모집으로 만난 중년 아재 다섯이라면 어떨까? 짧지 않은 여행에선 각자의 이기(利己)를 숨길 수도 없고, 본성이나 본색은 바닥까지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간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인간사 피할 수 없는 이런 과정을, 무난하게 넘길 수만 있다면 그 또한 각 개인의 인생에 의미 있는 한 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돈 많고 시간 없으면 패키지, 돈 없고 시간 많으면 자유여행’이라는 말도 있다. 관성적으로 여행사 패키지에만 의존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자유여행만을 대단한 기치인 양 고집할 필요도 없다. 한쪽은 ‘편하게 즐긴다’, 다른 한쪽은 ‘느끼고 체험한다’는 차이가 있을 터이니 개인 취향과 여건에 따라 선택하면 될 일이다.
용기나 모험심 따위가 자유여행에 중요했던 건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내놓기 이전이었다. 지금은 간절한 꿈만 있다면 어디든 쉽게 계획을 짜서 자유여행 떠날 수 있는 시대다. 칠레나 아르헨티나 어느 도시의 거리 풍경이나 상가 간판은 물론 산골 오지인 잉카 트레일 45km 전 구간의 숲과 지형까지도 구글 지도로 어디서든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이 책은 ‘남미를 한 달쯤 여행하고 싶은데 여행사 패키지로는 만만찮은 비용도, 생면부지일 멤버들도, 너무 정형화된 스케쥴도 다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자유여행 떠나기엔 그저 막막…’하다는 분들을 염두에 둔 안내서 또는 동기 유발서쯤 되겠다.
오래전, 해외 자유여행이라곤 한 번도 안 해본 내가 혼자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설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먼저 다녀온 안영선 청년을 만나 세세한 여행 동선을 듣고 난 직후였다. 막막했던 머릿속이 환해지고 뿌옇던 시야가 사르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냥 계획 세워 떠나면 되겠네’ 하는 자신감이 물씬 생겨났던 그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준비했다.
중년 아재들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가급적 배제하고, 경유지별 동선과 이동 수단 등 실용적 실질적 여행 정보를 시간대별로 담는 데 충실했다. 남미 가실 분들이 따라하기 쉬울 것이고, 유사 일정 짜는 데 기본 토대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베링해를 건넌 초기 인류가 남미대륙까지 흘러와 살기 시작한 건 2만 년 전이라고 한다. 콜럼버스, 코르테스, 피사로 3인으로 대표되는 탐욕스런 유럽인들이 지난 5백여 년 전 원주민 인디오들을 ‘총, 균, 쇠’로 살육하여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 지도가 만들어졌다. 남미 주요 여행지들에 얽힌 이런 격동과 비운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들도 우리가 현지에서 보고 듣고 배운 대로 충실하게 기록했다. 인문 여행에 관심 둔 이들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 MBC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남미편에선 우유니 사막 복판의 다카르 랠리 기념 조형물(Monumento al Dakar)이 배경으로 나온 바 있다. 바로 앞 깃발 광장(Plaza de las Banderas)에는 전에 우리가 갔을 땐 없었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어 반가웠고, 기안84 작가가 소금사막 황혼 정경에 울컥하며 ‘오랜 꿈이었다’고 읊조리는 장면도 내가 주인공인 양 쉬이 공감이 되었다.
‘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라는 말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한 페이지밖에 읽을 수 없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오래전 현자도 이렇게 ‘여행을 통한 세상과의 만남’을 강조했다. 하물며 오늘날이야 어떠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현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1,600년 시공을 뛰어넘은 오늘이다. 세상이라는 책자의 페이지 수도 그만큼 방대하게 늘었을 터이다.
2024년 8월
비 오는 여름날
저자 이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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