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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진 Mar 19. 2024

"선생님 제 아이는 도시 학교에 맞지 않아요."

느린 아이, 도시의 과밀 학급을 벗어나 농촌 학교에 가다.    


큰 애는 느린 아이다


그 또래보다 키가 작고, 말랐으며, 공부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무기력하고, 그 외에 다양한 증상이 있어 이를 '느린 아이'라 정의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이때 난 내 애가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치료하려는 듯 보들보들한 손을 잡고, 아동정신과와 각종 상담센터를 드나들었을 정도로 반 미쳤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전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을 다 쏟아부어서라도 치료해주고 싶었다.


나는 홀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갔다. 내 애가 느린 건 뭐부터 잘못됐을까? 아이 유아 시기에 겪었던 가정 불화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부부가 일한다고 아이를 종일반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여러 자극을 시켜주지 않아서일까? 이러한 생각의 실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서 실타래가 되곤 했는데 도무지 풀어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는 '얘를 잘 못 키운 내 잘못이야.'라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매주 걸려오는 아이 담임선생님의 전화에 내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덧나기 일쑤였다. 학교에서 메워지지 않은 학습 결손을 놀이를 통해 공부에 재미 붙게 가정에서 지도해 보라는 거였지만, 내가 노력할수록 아이 공부가 나아질커녕 모자간의 애착관계가 어긋날 뿐이었다. 결국 학원, 과외, 온라인 강의 등 사교육으로 결손을 채워갔으나 큰 애는 학습 시간이 늘어나 놀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농촌 유학을 결정하기까지


그러던 어느 날 농어촌유학 뉴스를 보면서 '내 아들이 저렇게 학교 다니면 좀 더 행복해지겠다.' 생각했다. 농어촌 유학한 학생의 상당수가 전반적으로 만족했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스트레스 감소와 정서적 안정에 도움 되는 학교의 여러 프로그램 덕분이라 한다. 미취학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녀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학군지에 터를 마련해서 아이를 공부시키는 게 정석처럼 여겨왔던 만, 역(逆) 유학이라니 아이러니했다. 그럼에도 농어촌 유학을 간 여러 가정들의 사례를 통해 어쩌면 내 자녀에도 대안책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겨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큰 애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할 때쯤 2학년 담임 선생님과 상담차 학교에 갔다. 열 평 남짓한 교실에 작은 몸집의 어린가 앉을 책상과 의자가 스물몇 개가 깔려있었는데 그중에 유난히 지저분한 아들의 책상이 보였다. 많은 학생들 속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 한채 엎드려 자거나 낙서하는 큰 애의 모습을 그려지면서 '배움을 위해 간 학교에서 너는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애잔한 시선을 좀처럼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아들의 스승과의 상담. '먹는 게 시원찮아서 공부할 힘이 없어 보인다. 연산 방법을 계속 알려줘도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없다.' 등의 코멘트를 받은 난 쩔쩔매며 '가정에서 아이 체력 관리에 좀 더 신경 쓰겠다라든지 시간이 날 때마다 간단한 연산을 시키겠다.' 등 읊조릴 뿐이었다. 학급 수 20명이 넘는 과밀학교의 교사 한 명이 느린 아이가 학업을 따라갈 수 있게 이끌어가기 역부족일 테지 하며 그녀의 당부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지만, 내년에 사회, 과학, 영어 과목이 늘어나는데 과연 큰 애가 따라갈 수 있을까이대로 내 아이가 3학년, 4학년이 되어도 체력은 나아지지 않은 채 학업 역시 제자리걸음일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변화해야 할 때야.


"선생님 제 아이는 도시 학교가 맞지 않아요. 지난 2년간 지켜봤지만, 저희 아들은 공부에 치여 오히려 운동할 시간, 놀 시간을 빼앗겨서 체력이 좋아지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학교에서 학습을 채워준다면 아이가 자유롭게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과밀학교에서 제 자녀는 느린 아이로 남아 있을 뿐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한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고추잠자리가 날갯짓하는 향기가 느껴지는 그 계절에 막연하기만 했던 농촌 유학로의 좌표를 찍고서 곳곳에 이정표를 향해 나아갈 뿐,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너와 난 농촌 라이프로 향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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