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가방속 빨래감을 한아름 안고 세탁실로 가는데 싱크대에 냄비며 접시며 한 그득이다. 세탁기에 빨래감을 쏟아 붓고 잰걸음으로 싱크대로 바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자기가 한다며 요즘 설거지도 시키지 않는 아내 인데 이정도는 해도 된다는 생각 인가 보다. 뒷통수에 붙은 눈으로 아무리 눈치를 보아도 아무 말이 없다. 그냥 한다 :)
집안에 있는 접시라는 접시는 다 나와 있다. 수저통도 텅~비어 있는걸 보니 아침, 점심, 저녁을 한번도 설거지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이게 뭐야 아침부터 설거지 한번도 안한거야?"
나의 공격시도에 아내는 하던일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본다.
'아..차차..나 3박4일 골프 다녀왔지..크..큰일이다..내가 또 생각없이 속에 있는말을..해버렸..' 긴장한 마음에 손이 미끌어져 컵을 떨어뜨리고..혼자 긴장 타고 있다.
좀 전에 붙여 두었던 뒤통수에 눈을 다시한번 작동 시켜본다. 잠시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었다가 이내 눈치챈 아내가 달려 온다. 손은 움직이지만 나도 모르게 아랫배에 힘이 들어 간다. 어떤 무차별 반격이 들어올까? 식은땀 한방울이 또로로 이마에서 떨어진다.
"아니야. 오늘 저녁에만 나온 그릇이야!" 아내의 말에 두가지가 황당하다~!
한가지는 정말 저녁에만 나온 그릇이라는 것과 더 황당한건 이 여자가 공격을 안한다. 변명을 한다. 뭔가 이상하다. 내가 며칠을 집을 비웠는데도 말이다.
우선 네명의 아이들이 간식이며 식사며 미친듯이 먹어대는 통에 싱크대에 그릇이 금방 찬다는 거다. 그리고 분명히 지난 일요일에 사다 놓은 첵스 대용량 시리얼은 봉지만 남아 있다. 밥한번, 시리얼 한번, 간식 한번이면 접시며 수저가 동날만 하다.
그리고, 내 뒤에 서서 주절 주절 말하는 아내의 모습은 생경해도 너무 생경하다. 아내의 공격을 대비해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던 나는 숨도 참고 있는지 몰랐다가 가쁜 숨을 한번 내 뱉으며 얼른 아내의 말에 호응 했다.
"그래 그래 그렇지 그럴만 하지 암~~!! 그렇고 말고~! 아이고~ 이놈들 정말 소를 키워야 할까봐! 얼마나 먹어 대는지!" 누가 봐도 과한 공감이다.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기껏 여행 보내 줬더니 갔다 오자마자 잔소리야?애들 돌밥돌밥(돌아서밥하고돌아서면밥하는)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당신은 뭐 여행가서 좋은거 먹고 골프치고 놀다오니 아직도 당신이 제주에 있는것 같지? 정신 차려 당신은 애넷 아빠야! 다시는 골프 못갈줄 알아~!"1) 뭐 대충 이런 내용인데 정반대의 반응에 놀라울 따름이다.
아내는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남은 그릇을 다시 씻는다.
아내는 변했고, 나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아내는 좋게 변했고, 나는 나쁘게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
내 이마에 또로로 떨어지는 땀을 보며 여행이 힘들었냐며 내 걱정을 해주는 아내의 변한 모습에 감사하며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가득차있는 나의 모습에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