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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호 작가 Jan 13. 2023

블랙핑크? 블랙피그

큰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의 이야기

우리 집엔 블랙피그가 한 마리 있다. 그 녀석이 1살일 때 플로리다 해변에서 남들 놀듯이 놀았는데 그 아이의 피부는 유독 까매졌다. 달라스로 돌아와서도 내리쬐는 태양빛이 강해서 인지 까만 피부가 태어났을 때 뽀얀 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까지~!


그 아이는 검정색 옷만 입는다. 피부도 까만데 검정색 옷만 입으니 그냥 모든 게 씨꺼멓다. 신발도 검정색 이름을 모르겠지만 앞머리 돌돌마는 것도 검은색이다. 다른 아이들은 핫핑크색을 머리에 달고 있더만..


그 아이의 별명은 블랙피그다. 내 눈엔 약간 통통한데 스스로 자신을 흑돼지라 부른다. 본인이 그리 부르니 온 가족이 다 흑돼지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 돼지라 부르는 건 너무 하다 싶어 블랙 피고 또는 B.P라 부르지만 P가 Pink가 아닌 건 우리 가족은 다 안다. ㅎㅎ


난 그 아이가 검정 옷을 걸치고 다니는 게 보기 안 좋다. 세상에 얼마나 이쁜 색 옷이 많은데 저렇게 검정색만 주구장창 입으시니 아빠로서 속이 상했다. 그래서 아빠랑 단둘이 쇼핑을 제안했다.


의외로 순순히 간다고 한다~! 앗싸~! 속으로 다짐했다. 검정옷은 절대 없다~!


방학도 되었고, 학원도 요가도 없는 시간 따님을 모시고 고속터미널 쇼핑몰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실랑이가 벌어진다. 걸어가는 발도 고급이신 따님은 대중교통은 못 타시겠단다. 차로 모시고 가라 하시는데 버스 타면 5분이고 주차하는데 시간이 30분은 걸린다 설명해도 "그건 아빠 사정이시고요~!" 가지 말까? 순간 생각이 욱하고 올라왔지만 잘 넘겼다.


"아빠가 공차 버블티 사줄게" 했더니, 또 쏘 쿨하게 오케이를 날린다. 방금 그렇게 날 세우던 아이 맞아요?


쇼핑몰에 도착했다. 어떻게 검정 옷을 피해가나? 하는데 따님의 손에 검정색 그것도 아무 무늬도 없는 무지 검정색 짧은 패딩이 들려 있다. 말도 안 하신다. 손으로 옷을 두 번 흔든다. 사 달라는 거지 뭐. 나는 전화 온 척 스윽 뒤돌았다. 그러고 옆 가게 쪽으로 걸었다. 자기 말이 통하지 않은 딸은 짜증을 한번 내더니 따라온다.


조금 가니 파스텔톤 니트들이 진열된 샤방샤방한 가게가 있다. 뒤통수에 붙은 눈을 가동시켜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지 보니 그녀가 따라 들어온다~! 일단 성공이다.   


곰돌이 그려진 조끼와 파스텔색 골댄 바지를 내 눈에 이쁜 기준으로 추천해줬다. 내가 돈 낼 건데 내 눈 이뻐야지~! 딸아이의 얼굴은 마치 레몬을 잔뜩 씹어 먹은 듯 오만상이 그려져 있다. 딸이 "아빠 내가 입을 옷은 내가 고르면 안돼요?" 1초도 망설임 없이 "응. 안" 대답한다. 나름 팽팽한 신경전이다.


눈치 빠른 가게 언니들이 옆에 와 도와준다. 정말 하늘이 돕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이들은 그렇다. 아무리 엄마 아빠가 옳고 바른말을 해줘도 귀등으로도 안더니 옆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누가 말하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그게 10대고 자식 들이지 뭐... 당연하다.


살짝 거울에 비친 딸과 내 모습이 본다. 딸은 검정색이 아닌 옷을 받아 들고 좋은듯하지만 아직 어색해 하고, 아빠는 그냥 입이 귀에 걸렸다. 이렇게 첫 집에서 회색 곰돌이 가디건, 흰남방, 검은바지를 샀다.


가게를 나와 다른 장소를 물색 하는데 딸이 옆꾸리를 쿡 찌르며 "공차~!" 다른 말도 없다. 그냥 공차다. 첫집에서 나름 큰 수확을 얻었으니 "네네 따님 공차 드리러 가시지요~!!"기쁘게 대답했다. 원하는 옷 못 사게 한다고 뾰루퉁 하던 딸이 기분이 금세 좋아 졌는지 와락 팔장을 낀다. 팔뚝에 딸의 가슴이 와닿아 아빠의 오른팔은 굳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2차 성징이 빠르게 진행된 결과로 가슴이 꽤 크다. 지난번에 속옷 사이즈가 80B를 사던데.. 아무튼 조금만 더 크면 아빠 보기를 돌같이 볼 수도 있으니 옆에 있을 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긴장을 조금 푸니 팔에 힘도 빠진다. 큰 딸과 함께 하는 첫 쇼핑데이트가 너무 행복하고 겉으론 많이 컸지만, 아직 애기인 큰딸이 새삼 다시 보였다.

  

큰딸이 묻는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해요? 아침에도 보면 이야기하고 저녁때도 맨날 엄마아빠 이야기 좀 하고 올게 하면서 커피숍을 가고 하잖아요?" 딸의 말이 맞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야기라 말하지만 아이들 저녁 대충 차려 주고 둘이서 맛있는 저녁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둘이 정말로 커피숍 가서 중대 사안들에 대해서 끝장 토론을 할 때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에 우리 집에서 큰 아이들은 부모의 이런 대화하는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이들의 배우자와도 소통을 많이 하고 대화가 잘 되는 부부가 되었으면 잠시 바래 본다.


공차의 찐 단맛 때문인지 버블티를 쪽쪽 빨면서 생각이 너무 많이 앞서 나갔다.


쇼핑몰을 즐겁게 돌아다닌 "우리 부녀"는 검은 옷은 바지 하나만 샀다. 청바지도 사고, 흰색 맨투맨도 두장이나 샀다. 아이보리 간절기 잠바도 샀고... 그냥 자랑하는 거다. ^^ 아이도 검은 옷만 편하게 입다가 다른 옷을 시도하기 어색했었는데, 오늘 쇼핑해 온 옷들을 집에서 다시 입어 보는데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자신을 비춰 보는 게 검정색 옷만 앞으로 고집하지는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블랙 피그가 블랙 핑크 처럼 이쁜 아이돌이 되는 그날을 아빠 혼자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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