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을 두고 나는 그닥 기분 좋은 글을 쓰지 않았었다. 그 때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이미 이 작품과 감독의 신뢰는 칸에서의 수상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의 기쁨과 환호는 그 시점에 온전히 표현됐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모순, 계급사회의 통렬한 비판은 봉감독의 전매특허인데 아무리 작품성이 좋아도 CJ라는 대기업 ‘자본’의 위력을 다른 사람이 아닌 봉감독 작품의 수상으로 확인한다는 일이 한편으로는 참으로 씁쓸한 것이다. 이 대단한 영예와 쾌거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다만 현실인식과 비판은 늘 현실 그 자체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이런 세상에서 미미하고도 무력한 나라는 한 개인이 절망하지 않고 심지어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게 참으로 어렵구나...”
1년이 지나 또다시 물 건너 세상에서 희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해보는 주말이다. 사실 윤여정 배우가 수상하지 못한다 해도 이미 그녀는 수상자나 다름없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각종 영화비평가협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미국 독립영화 시상식(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등에서 여우조연상으로만 40관왕을 달성했다. 이 정도면 그냥 죄다 휩쓸고 있는 거다. 마지막 하나 오스카가 남았는데, 물론 지금까지는 유력하다.
개인적으로는 난 오스카의 권위나 위상에 대해 회의를 갖는 사람이지만 대한민국의 문화영향력 확대 차원에서 이번 시상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기생충>처럼 감독이나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연기력 하나로 한 배우가 이토록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감독의 역량이 아무리 우수해도 영화는 다양한 사람들의 총체적 능력으로 빚어내는 종합예술이다. 같은 이유로 배우의 역량을 논할 수도 있겠지만 윤여정을 두고는 예외를 적용하고 싶다. 공로상이나 여우주연상이 아니라 ‘여우조연상’으로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사실도 그 예외에 힘을 보탠다. 삐딱한 시선인 줄 알지만 앞의 두 상은 때때로 나이값이나 이름값일 경우가 있다. 그러나 조연상은 주연상에 비해 관심도가 낮기 때문에 연기력이 특출하게 빛을 발하지 않으면 받기 어려운 상이다. 영화 안에서의 존재감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더욱 냉정하게 말해서 <미나리> 안에서의 윤여정의 연기는 그렇게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주관적인 느낌이다.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윤여정의 연기를 봐온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 최고로 ‘물이 올랐다’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핍진하게 도야한 그녀의 연기가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구나, 하는 마음 하나가 그녀의 수상을 바라는 내 바람의 전부다. 20대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함께 은퇴, 이혼 후 오로지 생계를 위해 단역부터 다시 시작했던 그녀다. 역할의 경중이나 분량 따위의 겉멋들린 자존심 경쟁, 세월의 흔적을 피해 외모로 때워보려는 부질없는 시도조차 없었던 성실한 배우. 흔하디흔한 그 세계의 스캔들은 물론 적잖이 거슬리기도 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도 미스캐스팅 논란 한 번을 만들지 않았던 천생배우가 바로 윤여정, 그녀이기 때문이다.
노장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윤여정 원탑, 오로지 윤여정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두 편을 소개한다.
<죽여주는 여자>(이재용, 2016)
정말 이 영화 ‘죽여준다’! 2016년 한 해에만 윤여정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무려 3편이다. 다작의 여왕으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이토록 파격적인 변신은 없었다. 오스카로 난리칠 것도 없는 게 이미 이 영화로 그녀는 몬트리올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었다는 사실.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여배우들>에서 처음 윤여정과 호흡을 맞췄던 이재용 감독은 영화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꾀하는 감독이다. 배우 인생 50년 동안 이 영화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던 윤여정의 말을 일말의 의심 없이 이해할 만큼 ‘죽여주는’ 박카스아줌마로 분한 그녀를 보는 내내 나 역시 숨이 차도록 힘들었다. 감독이 윤여정만을 믿고 밀어붙인 티가 그만큼 역력하다.
노인의 빈곤, 우울, 성, 자살률, 존엄사는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소외된 자들은 모조리 봐주마 작심을 한 듯 이 영화 안에 이것들을 다 쑤셔 넣었는데도 이질적이지 않다. 심지어 유머와 따뜻함이 넘쳐나기까지 하니 더욱 더 기대를 놓지 마시라.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공감은 상황에 대한 직면 가운데에서도 깊이 배어나는 휴머니즘으로 페이소스를 유발할 때라야 힘을 갖는다는 것, 이 영화가 완벽히 보여줄 것이다.
윤여정의 스크린데뷔작이자 단숨에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 준 <화녀>(김기영, 1971)와 함께 재개봉 상영 중이니 극장에서 보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계춘할망>(창감독, 2016)
<미나리>의 ‘그랜마’보다 훨씬 실감났던 할망 계춘. 뇌졸중연기보다 치매연기가 더 쉬웠을 리는 없는데 제대로 정신줄 놓은 모습이 딱 그녀가 가진 내공의 깊이구나 싶다. 할머니 나이여도 할머니 같지 않게 그녀 특유의 모던함과 도회적 세련미는 어쩔 수 없다 싶을 때가 많았는데 유독 이 영화에서는 거슬리지 않았다. 격한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힘을 빼고 연기했다는 게 여실히 보이는 거지.
스토리는 처음부터 짐작이 되었던 터라 작정하고 눈물 빼는 장면에서도 땅을 치고 곡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제주의 빼어난 산수, 그것과 수미상관을 이루는 그림덕분에 눈이 호강하여 다 용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조부모, 특히 할머니와의 특별한 추억이 많은 분들이라면 곳곳에서 눈물샘이 터질 것이니 그런 분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길.
어쩌면 평범한 가족영화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결코 만만한 영화는 아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큰 진리를 담고 있으니까. (잘)난 사람들이 되레 스스로 망가지거나 세상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숱한 걸 보면, 결국 좋은 기운과 영향력은 선한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하늘이 넓니, 바다가 넓니?” 이 질문이 3번 나오는데 감상 전 미리 답을 생각해보시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