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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04. 2021

흔들려야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

by <타인의 삶> - 루쉰의 아포리즘과 함께 하는 글

※ 이 리뷰에는 줄거리 소개가 있습니다.


1.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했던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동베를린의 상황은 삼엄했다. '모든 것을 파악한다'는 목표 아래 10만 명의 감청 요원과 20만 명의 스파이가 동독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 비즐러(울리쉬 뮤흐)는 이 비밀경찰 슈타지의 요원이다. 사회주의 신념으로 가득 차 있으며 붙잡혀 온 반체제인사들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특출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어느 날부터 극작가 게오르그(세바스티안 코치)와 그의 연인이자 연극배우인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의 감청을 시작하게 된다.

정치는 현상을 유지시키고 통일시키려 하고, 문학 예술은 사회 발전을 촉진시키고 점차 사회를 분열시킨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사회는 그래야만 발전한다. 문학과 예술은 정치가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되고, 추방당할 수밖에 없다. - <정치와 문학 예술의 차이>


로봇처럼 표정이 없어 언뜻 냉혈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비즐러이지만 이들 커플의 은밀한 사생활을 접하면서 그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찾아온다.
처음에는 게오르그와 크리스타가 나누는 따뜻한 사랑의 말들과 행위들에,
다음에는 9월의 푸른 달과 조용하고 창백한 얼굴의 그녀, 여름 하늘, 하얗디하얀 구름... 게오르그의 빈 집에서 훔친 브레히트의 시집 속 서정적 언어를 통해,
이윽고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에 담긴 아름답고도 슬픈 선율을 들으며,
비즐러는 자신이 감정의 폭풍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이 곡을 듣고도, 진심으로 듣는다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타나>는 권력에 밉보여 10년간 은둔생활을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게오르그의 스승이자 선배 예르스카의 유산이었다.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을 듣고 ‘계속 듣다간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 했던 레닌의 감정을 똑같이 공감하면서 비즐러는 잿빛의 세상에 색을 입히기 시작한다. 얼음장 밑으로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시인이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다. 사람들 누구나 마음에 시가 있다. 시인이 시를 쓰지만 그 시는 시인 혼자의 것이 아니다. 시를 읽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인의 시를 가지고 있다. - <시인이란>


이제 비즐러는 과감히 두 사람의 삶에 끼어들기로 한다. 문화부장관인 헴프가 게오르그를 철저히 감시하도록 지시한 것은 그가 블랙리스트 인사이기도 하지만 크리스타를 마음껏 농락하기 위함이었다. 예술인들의 생명줄을 쥐락펴락하는 헴프의 성상납 요구를 크리스타는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괴로움이 너무 커 신경안정제까지 복용 중인 크리스타. 비즐러는 그녀를 돕기 위해 이 사실을 은밀히 게오르그에게 흘린다. 나아가 그녀 앞에 직접 나타나 “당신은 훌륭한 배우예요.”라며 망가져가는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앞길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어이 가는 것, 바로 절망에 대한 반항이다. 절망하지만 반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희망으로 인해 전투를 벌이는 사람보다 훨씬 용감하고 비장하다고 본다. - <절망에 대한 반항>


‘타인의 삶’에 대한 개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예르스카의 자살 이후 더 이상 비굴한 예술가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게오르그는 서독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동독예술인의 자살률 증가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로 한다. 비즐러는 게오르그의 글을 연극 대본으로 탈바꿈시켜 보고하지만 당국은 게오르그의 집을 수색하고야 만다. 하지만 원본 찾기에는 실패.

소리가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고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갈 때, 사람들은 자기됨을 갖기 시작할 것이고, 사람들이 자기됨을 갖게 될 때 사회의 큰 각성이 가까워진다. - <참소리와 진정한 자기>


그러나 이미 윗선에서는 그 글의 작성자가 게오르그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불법으로 약을 복용중인 크리스타의 약점을 이용해 자백을 받아낸 것. 짓궂은 장난을 즐기는 운명이라는 놈은 크리스타와 비즐러를 취조실 안에서 마주하도록 하지만 사실 비즐러에게는 비책이 있었다. 자백의 대가로 구금된 크리스타를 귀가시키는 동시에 심문으로 알아낸 타자기의 위치를 민첩하게 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 짓눌러도 불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불꽃>


안타깝게도 ‘타인’들은 그 사실을 알 리 없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크리스타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게오르그, 그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간 크리스타.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마지막 순간...  

비극은 인생에서 가치 있는 것들이 부서지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희극은 무가치한 것들이 파열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 <비극>


출세가 보장돼 있던 비즐러는 이후 우편배달부로 좌천되어 그림자처럼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세상은 달라졌지만 그는 그의 삶에 순응한 채 묵묵히 편지만을 배달한다. 한편, 통일 후 절필을 선언했던 게오르그는 한참 뒤에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했다는 사실과, HGW XX/7이라는 사람이 뒤에서 자신과 크리스타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더 큰 사실을 알게 된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무한한 고마움을 게오르그는 과연 어떻게 전달했을까. 말로 다할 수 없는 뭉클한 그 순간만큼은 직접 영화로 확인하시길.

나는 다음의 주장에 찬성한다. “사람들을 인류 차원에서 대해야지 국가 차원에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영구적인 평화가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들이 각성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국가라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참된 마음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다. 1차대전 중에도 외국의 여러 신문에서는 군인들이 휴전 중에 서로 내왕하였던 미담과 전쟁이 끝난 뒤 서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들은 비록 국가에 붙들려 있지만, 달리기 시합에서처럼 시합할 때는 경쟁자였으며 끝난 뒤에는 친구가 되었다. - <국가를 넘어서서>


2.
“난 그들의 삶을 훔쳤고, 그들은 나의 인생을 바꿨다.”
비즐러의 말이다. 그리고 결국 게오르그가 했을 말이다.

나는 어디까지 오롯이 나 자신일까?
무엇으로 그것이 순수한 내 자신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과연 내 것인가?
내 행동은 내 진심의 정확한 발로인가?
그리하여 내 삶은 정녕 나만의 것일까?

칸트, 니체, 헤겔 등 철학의 대가들을 낳은 나라답게 독일 영화들은 하나같이 철학적 담론이 가득하다. 이 영화는 나와 타인의 삶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사랑과 예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지배하는지를 숨 쉴 틈 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나와 타자 사이의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예의를 상실하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 사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익명성에 기대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 악랄함이 삶의 피폐와 몰락을 가져오는 것도 모자라 기어이 스스로 생명줄을 끊게 만드는 경우를 숱하게 목도하고 있는 요즘-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가 우리의 심연에도 울려 퍼져야 할 때가 온 게 분명하다. 그 소나타가 음악일지, 시일지, 영화일지, 혹은 우리들끼리의 애정 가득한 말 한마디나 눈빛일지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터. 하지만 변화의 결과는 같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이왕이면 좋은 사람으로 타인의 삶에 기억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 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그 불행한 몇 사람들이 구제할 길 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 아닐까?”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철의 방에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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