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혼
꿈을 꾸었다. 정훈이가 나왔다. ( 앗 착각하실지도 몰라서 제 인생에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둘 있는데 여기에서 정훈이는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정훈) 정훈이가 꿈에 나와서 울었다가 웃다가 슬퍼하다가 기뻐하다가 그랬다. 이 작은 아이( 실상 키는 190cm에 육박하고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좋은)를 처음 만난 날이 언제였는지 가만 떠올려본다. 소설가 한강이 좋아서 소설가 한강을 위한 카페가 다음에 있었다. 20대 초반이었다. 소설가 한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였고 소설가 한강도 그 카페에 와서 나의 보잘것없는 작품을 읽어주어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었다. 대부분 카페 회원은 스물 전후였다. 이십대 초반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많았다. 처음 정모라는 걸 한다고 했을 때 나갈까 말까 갈등을 했고 당시 나의 첫사랑은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으로 모임에 나가보라고 권하지는 않았다.
카페에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는 이들 중에 동갑내기는 두 명 있었고 글을 유난히 아름답게 쓰는 한 여자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가 궁금해서 첫 정모에 참가했다. 카페를 오픈한 클럽장 오빠가 분위기를 잘 이끌었고 하나둘 신촌 언저리에서 우리들은 모여 맥주잔을 기울였다. 책으로 만난 첫 정모였고 온라인으로 만난 첫 사람들이었다. 모두 다 착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강의 소설을 갖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때 정훈이도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정훈이를 콕 찍어놓은 이들이 꽤 많았다. 외모는 터미네이터를 닮았다. 키는 190에 육박했고 어깨가 넓었고 목소리가 좋았으며 충청도 남자처럼 느리게 말을 했다. 하지만 제주도 사람입니다. 다정했고 젠틀했다. 상대방을 항상 배려했고 모두에게 다정했다. 모르는 것이 거의 없었고 박학다식했다. 가물가물한데 토목공학과였던가 건축학과를 다니고 있었던가 그랬다. 가끔 시간이 남고 그러면 고대앞으로 가서 정훈이랑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칭얼거리는 쪽이었고 다정하게 귀를 기울여주었다. 이것은 정훈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의 특징인듯.
박학다식했던 정훈이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있었고 우리 북클럽에서도 인기가 짱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삐쩍 말라 여동생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찾았을 때에도 있는 동안 여기를 데려가고 저기를 데려가면서 사흘 동안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동생이 굳이 비교를 하려는 건 아닌데 언니 언니 첫사랑보다는 저 오빠가 백배 나은 거 같다 라고 해서 막 신경질을 부린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도 좋아하셨고 아빠도 좋아하셨다. 사윗감하기 딱 좋아 라고 여러모로 좋아하셨지만 말했다시피 그는 인기가 너무 좋아서 나는 친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술김에 고백도 했던 거 같은데 알고보니 카페에서 그에게 고백하지 않은 여자들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역시 카페 내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다정한 여인과 사랑을 했는데 그 사랑은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아주 시간이 흐르고 정훈이를 욕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도 정훈이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완벽해보이는 우리 정훈이도 완벽하지 않았구나 했다.
그렇게 다정한 우리 정훈이가 내게 화를 막 낼 때가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모임중에 내가 너무 애처럼 군다고 조용히 타일렀다. 화가 나서 나는 마구 화를 내며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맞다, 정훈이가 맞았고 내가 틀렸다. 그래서 더 화가 나서 화를 내도 정훈이가 다 받아들여줄줄 알고 화를 냈다가 정훈이 화내는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서 막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엄청 울었다.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만났지만 한동안 말도 안 걸었다. 얼마나 유치한가. 그래도 마냥 웃어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또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만났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할지 다시 취업을 해야할지 갈등하던 시기였고 정훈이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다가 월급은 너무 적고 일은 툭하면 야근이 많아서 몸이 많이 축났던 시기였다. 그래서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마시며 서로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_ 정훈이는 카페에서 만난 그 착하고 다정한 후배와 계속 연애중이었다,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그 즈음에 들었던 것도 같다. 얼마 전에 시작한 연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자기가 아는 군대 후임이랑 진짜 비슷하다고. 마침 연인 사진이 있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훈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왜 그러냐 물어보니 군대 후임이 맞다고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남자가 군대 선후임이라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둘이 서로 그렇게 한 공간 안에서 책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서 그것도 신기했다. 근데 왜 화를 내? 물어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훈이는 그 관계를 당장 끊지 않으면 나는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나는 정훈이를 택하지 않았고 연인을 택했다. 그 뒤로 정훈이와는 가끔 전화 통화만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될줄 몰랐지만 그때 연인을 택하지 않고 친구를 택했더라면 정훈이가 힘들때 옆에서 만나서 토닥거려주고 나도 힘든 시기 여느때처럼 녀석의 위로를 받게 될줄 알았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지금 후회한다. 후회는 언제나 미처 행하지 못한 일의 아쉬움과 죄스러움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정훈이가 꿈에 나왔다. 우리가 어렸을때 같이 놀았던 그 시절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정훈이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아서 당황한 나는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다가 꿈에서 깼다. 여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정훈이가 꿈에 나왔는데 꿈에서 울었어. 하니 터미네이터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외국에 나간다고 했던 것도 같고 제주도로 돌아갔다고 했던 것도 같은데 정훈이 최근 소식을 아는 이들은 지금 연락이 닿는 이들 중에 아무도 없다. 작정하고 잠수를 탔는데 어떻게 알아내겠어 하고 친구들은 이야기.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고 그런다면 어딘가에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 없다가 꿈에 나타나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안 좋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면 좋겠다. 외국에 살아도 좋고 제주도에서 살아도 좋고 서울에서 살아도 좋으니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나 잘 지냈어?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라고 소식을 전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